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40)은 국보급 음악인이다.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솔로 앨범을 내고 단독 콘서트를 하는 이는 국내에 오직 그뿐이다. 8년 만에 낸 정규 앨범이 그래서 더욱 반갑고 귀하다. 26일 만난 그는 "TV에 나가지 않았을 뿐 2008년에는 가요를 리메이크한 스페셜 음반을 냈고 2012년엔 오케스트라와 공연도 했다"며 "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은 준비하는 데만 반년이 걸릴 만큼 심혈을 기울였고 배운 것도 많았다"고 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구상했다는 정규 3집 '댄싱 버드'는 제목처럼 싱그러운 곡들로 가득한 수작이다. 봄의 기운을 담은 삼바 리듬의 '댄싱 버드'와 3박자곡 '봄의 왈츠'가 전반부를 상큼하게 장식하면 볼레로 리듬의 느린 춤곡 '뒷모습'과,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듀오로 연주한 '항해'가 아련한 감상을 선물한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오스카 피터슨을 염두에 두고 만든 '세인트 피터슨'은 재즈 연주자 전제덕의 재능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프 벡의 '코스 위브 엔디드 애스 러버스'를 연상시키는 벤딩 주법이 인상적인 '돌이킬 수 없는', 스티비 원더의 곡을 연주한 '컴 백 애스 어 플라워'는 하모니카의 다채로운 매력을 유감 없이 펼쳐 보인다. '컴백 애스 어 플라워'가 수록된 스티비 원더의 앨범 '저니 스루 더 시크릿 라이프 오브 플랜츠'는 새소리, 빗소리, 천둥소리, 곤충 소리 등 다양한 음향적 요소로 전제덕의 새 앨범 제작에 큰 영감을 줬다.
펑키하고 일렉트릭한 퓨전 재즈로 채웠던 2집과 이번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 전혀 다르다. "2집에선 미국적인 날 것의 펑키 음악이 아니라 조금 세련되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진 못한 것 같아요. 연주하는 입장에선 보람이 있었지만 (상업적 실패가) 현실로 다가 오니 상당히 힘들었어요. '내 생각이 잘못 됐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1집처럼 좀 더 멜로디를 강조하는 음악으로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죠."
2집의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것 때문일까. 공백 기간 그는 곡을 쓰면서 지우고 또 지웠다. "멜로디적 접근을 했으면 좋겠는데 자꾸 '이거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로 구성돼 있지만 '어쿠스틱 사운드'라는 일관성은 지켰다. 1, 2집과의 차별성이 여기 있다. 재즈 연주자인 정수욱 프로듀서와는 재즈 성분의 함량 조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생후 보름 만에 시력을 잃었다지만 그의 음악은 여느 음악인의 그것보다 회화적이다. 하모니카에 집중하기 전까지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쳤기 때문인지 리듬만으로도 그림 하나를 뚝딱 그려낸다. 전제덕의 그림이 살아 숨쉬는 것을 직접 확인하려면 내달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단독 공연을 찾으면 된다. (02)3143-5480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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