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법원이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 529명에게 사형을 선고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지 이틀만인 26일 무르시 지지자 919명을 상대로 또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다.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무르시를 몰아낸 군부가 무르시 지지세력이자, 자신들의 정적인 무슬림형제단을 와해하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사법살인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압델 파타 엘시시(60) 국방장관은 이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군부의 정권장악 시나리오에 한 발 더 다가갔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 919명 가운데 715명은 지난해 7월 무르시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후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것에 불만을 품고 경찰서 등을 공격해 6명을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나머지 피고인 204명도 같은 기간 경찰관 폭행과 공공재물 훼손 등의 혐의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다. AP 통신은 "두 건의 재판날짜는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면서도 "재판이 열리는 곳은 지난 24일 무르시 지지자들에 사형 선고를 내린 민야지방법원"이라고 전했다.
민야지방법원의 사이드 유세프 재판장은 24일 변론기일을 연장해달라는 변호인단의 요청도 기각한 채 첫 공판이 열린 지 이틀 만에 529명에 사형판결을 내렸다. 사형판결을 받은 피고인들 가운데 당시 법정에 출두한 이는 147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궐석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 결과가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재판 개시 이틀 만에 집단 사형판결이 난 점 등의 절차상 논란을 들어 재판결과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25일 발표했다. 사형판결에 항의하는 무르시 지지자들은 26일 카이로대학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보안군과 충돌해 대학생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그러나 향후 재판들도 절차상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 보도했다. NYT는 "919명 피고인 가운데 163명 만이 구금상태이고 나머지는 체포가 진행 중"이라며 "상당수가 궐석재판을 받게 되는 만큼 제대로 된 변론은 힘들 것"이라 전했다.
NYT는 또 "무함마드 바디에 무슬림형제단 최고지도자는 이번 재판뿐 아니라 다음달 28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재판의 피고인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 법원은 지난해 8월 무르시 퇴진 항의시위 당시 경찰관 살해 등 혐의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 683명에 대한 재판을 무더기 사형판결이 난 다음날인 25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여론이 악화하자 다음달 28일로 선고공판을 미뤘다.
무르시 지지자에 대한 대규모 재판은 6월 전후로 예상되는 대선을 앞두고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에 내린 사전경고 성격으로 풀이된다.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는 지난해 12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며 이 같은 움직임을 암시해왔다.
차기 이집트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군부 최고 실세 엘시시 국방장관은 26일 TV로 녹화 중계된 성명발표를 통해 국방장관직 사임과 함께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엘시시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무슬림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무르시 지지파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NYT는 "2011년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퇴진시킨 이집트가 1954년 공화국 출범 이후 6번째 군 출신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군부가 권력을 쥔 과거 정치구도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엘시시의 러시아 방문 당시 그의 대통령 당선을 공식 지지했지만, 미국은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무르시나 군부 출신인 엘시시에 대한 평가 자체를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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