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 논란을 빚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집행 절차에 착수했다. 벌금집행을 포기하고 노역을 시키다 다시 벌금을 받아내겠다며 도중에 노역을 중단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비난의 화살이 검찰에 쏠리자 고육지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허 전 회장에 대한 형집행정지 사유로 형사소송법 47조에 명시된 7가지 사유 중 '기타 중대한 사유'를 적용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단 하루만의 법리 검토 끝에 이전에 적용하지 않았던 사유를 찾아내 형집행정지를 결정했을까 싶다. 대개 형집행정지 결정은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지만 이런 절차도 생략해버렸다.
당장 급한 불은 껐을 지 모르지만 이번 조치는 검찰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재산이 있는데도 숨긴 채 노역을 선택하는 수형자를 찾아내기 위해 일일이 재산을 뒤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 집행의 형평성 시비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면 진작에 서둘러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이 노역을 중단시킨 건 벌금을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건데 그렇다면 허 전 회장 귀국 즉시 노역 집행을 않고 바로 벌금 집행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는 것이다. 허 전 회장이 5일 동안 노역장에 머무르면서 실질적으로 노동을 한 시간은 기껏해야 10시간 안팎이다. 건강검진에 신입수용자 교육에 주말이라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노역에 동원되지 않았다. 공연히 닷새 동안 노역장에 유치해 25억원의 벌금만 깎아준 셈이 됐다.
검찰이 무리수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애초 이 사건에 대해 벌금 선고유예를 구형했던 '원죄' 때문이다. 광주지검은 지난 2008년 허 전 회장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원을 구형하면서 탈루세금을 납부했고 횡령금도 변제 공탁했다며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요청했고, 이어 상소도 포기했다. 검찰이 공익의 수호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이번 일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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