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인 오데사는 요즘 뒤숭숭하다. 인근 크림 지역이 속전속결로 러시아 합병을 추진하면서 충격파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 있던 우크라이나 해군기지를 오데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오데사에도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 언제 러시아 합병을 주장하는 시위대가 광장을 점령하게 될지도 모른다.
22일 오데사의 유명 수산물시장인 프리보츠. 북적거리는 인파를 뚫고 커다란 첼로를 든 시민이 들어섰다. 그는 통로 한쪽에 자리를 잡더니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교향곡)을 독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로 그의 옆으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든 연주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선 첼리스트의 연주에 힘을 보탰다. 장보러 나온 시민들이 생뚱맞은 음악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매장 곳곳에 자리를 잡은 수십명의 오케스트라가 풍성한 음률로 하모니를 이뤘다.
연주 중간쯤 통로 한가운데로 지휘자가 나타나선 손짓을 보냈다. 언제 모였는지 모를 합창단원들이 악기들 사이사이에 서서 '합창교향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소리는 수산시장을 휘감았고, 시민들은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어대며 뜻밖의 선물에 감격해 했다. 5분간의 연주를 끝낸 연주자와 합창단은 시민들의 기립 박수와 환호에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자신들의 깜짝 공연을 자축했다.
수산물시장 콘서트는 오데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데사 오페라 극장의 합작품이다. 오케스트라의 호바트 얼(54) 단장은 지금의 정치적 대결구도에 반대하며 통합된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형제애를 지지하기 위해 마련한 공연이라고 키예프포스트에 밝혔다. 이날 공연에는 양측 단원 90여명이 참여했다. 얼 단장은 더욱 많은 연주자들이 함께 공연하고 싶어했으나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 인원을 한정했다고 전했다. 실내ㆍ외 공연을 통틀어 오데사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의 협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날 연주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제4악장으로 독일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환희의 송가'였다. 얼 단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대표하는 것처럼, 이 곡이야 말로 인류의 자유와 평화, 형제애를 노래하는 대표적인 찬가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수산물시장이 공연무대가 된 이유를 "프리보츠는 오데사 시민들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우한솔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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