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은 시민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해 공권력의 행사를 법에 의하여 보장받은 기관이다. 공권력의 행사는 주권을 가진 국민이 자신들의 안전과 인권보호를 위하여 국가기관에 권력을 위임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공권력의 행사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함이 유일한 목적이어야 하고, 정권의 안위를 위하여 혹은 기관의 존립이나 위상을 위하여 자의적으로 행사하여서는 안 된다.
형사절차는 법이 정한 범죄행위를 행한 자에 대하여 국가의 형벌권을 실현하기 위한 사법절차이다. 국가의 형벌권 실현을 위하여 범죄사실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가 수사절차이고, 수사를 통해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기소하여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유·무죄를 다투는 소송절차가 형사재판절차이다.
이러한 형사절차 가운데 특히 범죄사실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과정에서 그 대상이 되는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헌법에서는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처분을 당하지 않는다는 적법절차의 원칙,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피고인의 자백이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거나 정식재판에 있어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 이를 근거로 처벌할 수 없다는 자백배제의 원칙, 법원에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규정하여 피의자의 인권침해가 최소화되고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에 대한민국에서는 공정한 공권력의 행사와 피의자 인권보호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혹스럽고 처참하기까지 하다. 지난 2월에는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부추겼다는 혐의로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강기훈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3년 전 유죄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은 강씨를 범인으로 몰아 자백을 강요하였고, 법원은 그러한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국정원은 그의 여동생을 합동신문센터에 볼모로 잡아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하여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끌어냈지만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국정원은 공문서 조작에까지 나서서 유우성씨 간첩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자가 공문서 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이 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고 정의는 언젠가는 승리하게 마련이지만, 강압수사와 자백강요를 통해 없는 죄를 뒤집어 쓰는 억울한 피해자는 단 한 명이라도 없어야 한다. 수사기관은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오면 점수를 깎이면 그만이고, 재심에서 무죄선고가 나오면 (수사를 진행한 개인이 아닌) 국가가 그 피해를 배상하면 그만이지만 억울하게 혐의를 뒤집어쓰고 간첩으로 몰리고 살인범으로 몰리는 것은 평생에 남을 한이고, 배상을 받는다고 갚아질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처벌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은 형사절차상의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이 그만큼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다.
공개된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 측과의 공격과 방어를 통한 심리에 의해 유·무죄의 심증형성을 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공판중심주의이다. 공개재판의 형식을 취하지만 법관이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에 근거해 예단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또한 밀실에서 확보된 진술을 공개된 법정에서 실효성 있게 검증할 수 없다면 공판중심주의를 통한 공정한 재판이나 적법절차의 실현은 요원한 일일 뿐이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법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에 근거한 재판관행을 확 바꿔야 한다. 최소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대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 피의자가 메모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하여야 한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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