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섞어라 마셔라(5)

입력
2014.03.27 00:27
0 0

우리가 잘 가던 그 술집 신우에서는 한때 구두에 술을 부어 마시기도 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선배가 어느 날 갑자기 구두를 벗어 맥주와 양주를 섞어 붓고 한 잔 마시더니 ‘술잔’을 돌린 게 시작이었다. 출연자들은 경찰서에 출입하는 사회부 사건 취재기자들이었다. 시경캡(사건기자 우두머리)의 지휘를 받던 그런 기자들을 사쓰마와리(察廻リ)라고 불렀는데, 사쓰마와리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밤샘 야근을 하고, 별 일이 없으면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일과 술로 건강이 망가지는데도 마냥 좋다고 살던 시절이었다.

술맛이 이상한 걸 넘어 찝찝하고 역겨운 그놈의 구두주는 처음엔 비위가 좀 상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재미있기도 했다. 술잔을 제공한 선배는 자리가 파하면 구두를 오랫동안 탁탁 털어 술기를 빼고 도로 신고 갔다. 하지만 양말이 다 젖는 것은 물론이고 구두가 잔뜩 불어터진 데다 발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엉망이었다.

그때 그렇게 놀던 모습을 사진기자인지 누군지가 찍어 ‘영구보존하세’에 실은 적이 있다. ‘영구보존하세’는 잘못되고 우스운 기사의 초고나 에피소드를 입건해 수록한 사회부 스크랩 북이었다. 견습기자들이 낄낄거리고 읽으면서 선배들의 실수를 통해 일을 배우곤 하던 교육자료이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컴퓨터로 기사 제작시스템이 바뀔 무렵 다른 자료들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두고두고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누군가가 그 자료를 챙겼어야 하는데...

이렇게 구두주를 소개하다 보니 구두주의 대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입사 동기였던 P씨는 취하면 테이블 위의 술이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물체, 즉 옴팍한 것만 있으면 술을 따라 마시던 사람이다. 안주접시 큰 것, 작은 것은 물론 재떨이 병뚜껑에도 따른다. 그러지 말라는 사람의 안경도 벗겨서 “술 못 마시면 조금만 주겠다”며 따른다. 그가 언젠가 아내가 사준 새 구두를 신고 나와 여기에 밤새 술을 따라 마셨다. 그런데 술에 혹사를 당한 탓인지 다음 날 아침 발이 시원해 내려다보니 구두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지방에서 회사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여자 선배에게 구두주를 강권했다. 그 선배는 끝내 마시지 않고 거부했는데, 다음 날엔 거꾸로 자기 하이힐을 벗어서 “야, 너 이 술 좋아한다며? 너도 마셔봐라.”라고 들이댔다.

그는 테이블을 뒤집어 그 받침에도 술을 부었다. 네 다리 달린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 밑 한가운데 달린 원통형 받침에 소주 양주 맥주를 넘치도록 부은 후 어깨동무를 하고는 빙빙 돌다가 한 모금씩 마시는 식이었다. 바퀴벌레 알, 거미줄, 껌 씹은 것들이 달라붙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호우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어두컴컴한 지하 술집에서 그러고 놀던 사람은 ‘이런 모습만큼 그로테스크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술만 섞는 것도 아니었다. 안주가 남으면 접시에 쏟아 부어 새 안주를 만들었다. 멸치, 오징어, 육포, 고추장, 마요네즈, 간장 등등 모든 게 안주 재료였다. 수틀리면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을 한 팔로 쓸어내리고 테이블을 엎어버리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가 자주 다니던 어느 맥주 집에서는 테이블을 못 뒤집게 꽁꽁 묶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부서원 모두가 몸 돌보지 않고 이렇게 마셔야 단합도 되고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의 후배들도 그렇게 마시는 걸 힘들어는 했지만 아주 싫어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편집국장일 때는 검찰총장 이하 검찰 간부들과 점심을 먹다가 흥이 돋아서 대낮에 폭탄주로 일합을 겨루었는데, 오후 4시나 다 돼서 “다 쓰러뜨렸다.”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자들이 대개 다 그렇지만 그는 좀 티껍거나 아니꼬운 꼴을 보기 싫어했다. 처음 만난 외교관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그가 꼬냑의 향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좀 아는 체를 했나 보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향 좋은 술이 그리 좋으면 이건 어떠시오?”라면서 양말을 벗어서 대접에 넣고는 그 위에 맥주를 잔뜩 부어 따라준 적도 있다.

그의 운전기사의 마지막 일과는 널브러진 그를 업어서 집에 배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온갖 에피소드를 남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술을 마시던 그는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암이었지만 ‘충성주’를 만드느라 이마로 테이블을 너무 많이 받은 것도 건강 악화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하늘에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술을 즐기고 있을까. 내년이면 벌써 그의 10주기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