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노역'으로 논란을 빚은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이 조세회피처로 지정된 국가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허 전 회장의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 강제집행에 나선 검찰은 그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그룹 계열사 자금 등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조세당국과 함께 은닉재산 추적에 나서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26일 검찰에 따르면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는 뉴질랜드 영주권을 보유한 허 전 회장이 수년 전 해외 조세회피처로 지적된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경위를 조사 중이다. 그가 시민권을 취득한 조세회피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같은 군도로 알려졌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이 2007~2008년 그룹 계열사들에서 빌린 회사 돈 2,750억원 중 일부가 조세회피처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보고 이날 허 전 회장을 불러 재산 은닉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룹 계열사인 대한시멘트는 2008년 2~12월 신용등급이 부도등급까지 떨어진 대주건설에 2,100억원을 빌려주고, 2조원대의 지급보증까지 섰다. 대한시멘트는 이후 재무구조가 악화돼 2009년 4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허 전 회장은 당시 대한시멘트 지배주주이자 이사였다. 계열사 대한페이퍼텍도 2007~2008년 대주건설에 480억원을 무담보로 빌려주고 대주건설 채무 170억원을 대위변제했다. 대주건설은 2010년 10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검찰은 또 계열사에서 빌린 자금 일부가 대주그룹이 2002년 뉴질랜드에 설립한 현지법인 대주하우징(현 KNC건설)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뉴질랜드 사법당국과 공조수사를 통해 자금 흐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실제 대주건설이 대한시멘트 등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당시 대주하우징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홉슨 지구에 4억5,000만뉴질랜드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67층짜리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엘리어트 타워' 건설을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327㎙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전파송신 방해가 우려된다는 등의 민원이 제기돼 관련 소송에 휘말린데다, 건설비용 조달 문제까지 겹쳐 결국 사업은 무산됐다. 해당 부지는 올해 초 중국 부동산개발회사에 5,000여만뉴질랜드달러(460억여원)에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하우징은 작년 1월 KNC건설로 이름을 바꿨으며, 실제 소유주는 허 전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허 전 회장은 2012년 4월 오클랜드한인회 주최로 열린 한국의 날 행사에서 대주하우징 회장 자격으로 뉴질랜드 소수민족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대주그룹의 후신을 자처한 KNC는 현재 오클랜드시 홉슨과 마운트 이든 지구에서 옛 대주건설의 국내 아파트 브랜드인 '피오레'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168가구를 분양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허 전 회장이 계열사 자금 등을 국내에 은닉했는지, 해외로 유출시켰는지 여부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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