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난주 서울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과 접촉한 사실이 26일 확인됐다. 우리 정부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에 앞서 당사자인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취지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인사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과 만난 것은 처음이어서 내달 중순 한일 국장급 협의를 앞두고 태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야마모토 야스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지역정책과장과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참사관은 지난 17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 관계자와 만났다. 일본 정부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당초 일본 측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직접 만나길 희망했지만 할머니들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나눔의 집 관계자를 대신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일본 측은 아베 신조 총리가 14일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사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진정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1995년 만든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이미 국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60명이 기금을 수령했다면서 나머지 할머니들에게도 추가 배상할 의향이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미국, 호주 등에서 위안부 소녀상 건립운동이 벌어져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점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며 "한국과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국제사회를 향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55명에 불과해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면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양측의 만남은 탐색전에 그쳤지만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던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향후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내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국장급 협의 결과가 관심이다. 이와 관련,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은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은 위안부 복지 사업에 정부 예산을 투입할 것을 요구하는 한국 측 요구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26일 보도했다. 일본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우리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부분으로, 협의 결과와 위안부 문제의 진전 여부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일본의 법적 책임 대신 일본 측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이 절충안으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여성기금의 경우 민간 모금으로 설립해 일본 정부는 책임에서 비켜난 모양새를 취했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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