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잔혹한 인권 유린 행위가 벌어졌던 부산 형제복지원의 운영자 박인근(84) 원장은 7차례 재판 끝에 198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횡령죄)의 처벌만 받았다. 전두환 정권의 압력으로 폭행, 살인 혐의는 기소조차 못했고 원생 감금에 대해서는 '법령(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한 정당한 직무수행'이라며 무죄 판결이 났다.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과 국민포장까지 받은 박 원장은 이후 아들에게 복지재단(현 느헤미야)을 물려줬고, 그 일가는 현재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실로암의 집'과 사우나, 온천, 찜질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7년이 흐른 지금, 박 원장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 가능할까. 24일 발의된 형제복지원 특별법에는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상 책임만 담겼고(본보 26일자 12면) 가해자인 박 원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26일 형제복지원 사건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법학자들에 따르면 박 원장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살인죄가 인정된다 해도 공소시효(25년)가 이미 지나 형사 처벌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박 원장 일가가 현재 운영 중인 재단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인 취소 등 행정처분 가능성만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시는 2012년 형제복지원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에 대한 감사를 벌여 사회복지사업법 위반과 횡령 정황 등을 포착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으며 법인 설립허가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박 원장과 그의 아들인 재단 이사장을 횡령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이날 아들 박모(38)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죄 처벌 근거가 된 5ㆍ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 전 전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한 것처럼 형제복지원 특별법에 박 원장 혐의에 대한 시효 연장을 명시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럴 경우 박 원장 측에서 헌법이 규정한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정해놓는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며 문제 삼을 수 있다.
반면 형제복지원 사태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피해자들이 구타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 피해나 가해자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받아들여지면 진상 규명 이후부터 시효가 인정될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이 과거 행방불명된 부모나 형제가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사망한 사실을 진상 규명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피해를 인지했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뜻한다"며 "법원이 6ㆍ25전쟁 때 일어난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들과 관련해 2009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이후부터 시효를 적용,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아홉살이던 1984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당시 경험을 책으로 펴내고,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던 피해자 한종선(39)씨는 "박 원장이 저지른 일이 워낙 잔혹해 그가 사형선고를 받아 세상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버젓이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며 "끔찍한 일을 벌인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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