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노역(환형유치)을 보는 국민의 싸늘한 눈길이 재판부와 검찰에 대한 의혹으로 옮겨가고 있다. 허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의 '봐주기' 정황이 잇따라 드러난 때문이다.
허 전 회장에 대한 봐주기 정황은 2008년 9월의 검찰 구형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벌금에 대해서는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선고유예를 하지 않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의 환형유치 기간을 203일(노역 일당 2억5,000만원)로 결정했다. 노역 일당 2억5,000만원은 당시에도 화제가 될 만했지만, 결코 짧지 않은 203일의 환형유치 기간에서 산출된 액수여서 특별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항소심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형량을 낮추고 벌금까지 절반인 254억원으로 깎은 것이었다. 더욱이 환형유치 기간을 50일로 확 줄여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높였으니 여론이 비등할 법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아닌 광주지법 합의심 판결인 데다, 결정적으로 검찰이 상소를 포기해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는 바람에 중앙언론의 감시까지 피해갔다.
그런데 당시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광주ㆍ전남에서 29년 간 재직한 '향판(鄕判)이고, 허 전 회장의 부친 허진명씨도 같은 지역 향판(37년) 출신인 데다 두 변호인도 같은 향판 출신이다. 또 허 전 회장의 동생은 전ㆍ현직 판사 골프모임인 '법구회'의 스폰서, 매제는 전 광주지검 차장검사, 사위는 현 광주지법 판사다. 재판 절차 전체가 이 지역 향판ㆍ향검의 인적 그물망에 덮여 있었던 셈이다. 유착의 강도와 그물의 촘촘함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에 비하면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의 그물은 너무 성글다. 대법원이 환형유치 합리화 방안과 함께 향판 제도의 개혁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어쩐지 미적지근하다. 이번만큼은 벌금형에 대해서도 근본적 제도변화를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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