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차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애국적인 기업일까?"
최근 기업인들과 만났을 때 나온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납세를 기준으론 단연 삼성이고, 고용이 잣대면 현대차다. 2012년 삼성의 세금 납부액은 5조8,000억원으로 현대차(2조3,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고용의 경우 계산이 좀 복잡해진다. 삼성 자체의 고용 규모는 현대차에 비해 크지만, 협력사까지 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현대차는 1, 2차 협력사만 따져도 2,600여개에 달해 삼성(220여개)에 비해 10배 이상이다. 부품이 많고,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업종의 특성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차만큼 나라사랑(?)하는 기업도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런 현대차가 요즘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30여년 만에 이룬 일을 현대차는 불과 10년 만에 해냈다"는 칭찬이 자자하던 것이 얼마 전이다. 특히 지난 6년간 현대차의 반전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2008년만 해도 현대차는 일본차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우인 기아차는 더 참혹했다. 미국 일부 지역 딜러는 자금난을 이유로 요구르트나 우유 판매에서 볼 수 있는 '원 플러스 원(Buy One Get One Free)' 끼워팔기 행사까지 했다. 기아차 쏘렌토(2008년형)를 사면 스펙트라(2007년 구형)을 덤으로 주는 식이었다.
현대차는 2009년 파격적 광고를 앞세워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른바 바이백(Buy back) 프로그램이다. 신차 고객이 1년 내 실직하면 되사주겠다는 이 광고는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을 파고들었다.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매출이 곤두박질할 때 현대차만 나홀로 성장했다. 대형차 제너시스, 신형 중형차 소나타 하이브리드 등 고품질 차량을 잇따라 투입해 더 이상 싸구려 차가 아님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 리콜 횟수가 잦아지더니, 올 들어 품질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지난달 발표한 브랜드 인지도 평가에서 지난해보다 4계단 하락한 19위에 그쳤다. JD파워가 내놓은 차량 내구품질 조사에서는 2년 연속 하락해 전체 31개 브랜드 중 27위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위기다.
현대차는 현재 해외공장 건설과 각 단위공장의 자동화율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높은 자동화율은 생산성을 끌어올리지만,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세계 1위 자동차인 도요타의 일본 공장 자동화율이 현대차보다 낮지만, 숙련공 덕분에 생산성과 품질이 뛰어난 게 이를 반증한다. 명품 기업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현대차가 불안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준비'에 있다. 자동차산업은 지금 전례 없는 격변에 휩싸여 있다. 급속한 전장화(電裝化ㆍ전자장비화)가 단적인 예이다. 자동차가 IT제품화하는 건 대세다. 또 구글 등 IT업체들이 무인자동차 시험주행에 성공, 현대차의 미래 경쟁자가 도요타일지 구글일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전기차는 또 어떤가. 애플의 아이폰처럼 전기차가 자동차업계에 패러다임 전환을 몰고 올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난 100년간 가솔린엔진 중심으로 자동차업체들이 쌓아 올린 기술적 우위는 일거에 무너진다. 정몽구 회장은 현재 전기차 보다는 엔진을 쓰는 수소연료전지차에 승부를 거는 듯한 인상이다. 한마디로 미래의 싸움터가 될지도 모를 전기차나, 전장화 부문에서 확실한 우위를 굳힐 대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현대차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기 위해선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해 보인다. 정 회장은 예측 불허의 인사로 경영진에 긴장을 불어 넣고, 품질경영과 역발상 마케팅으로 글로벌 5위까지 현대차를 끌어올렸지만, 이제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미래 지향점과 목표, 전략을 담은 화두를 내놓을 때가 됐다. 그건 짧을수록, 이야기형태일수록 더욱 좋다. 스마트폰에서 실기한 삼성이 애플을 따라잡은 기적 같은 행운은 반복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미래의 변화는 늘 예상보다 빨리 온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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