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간 치른 분단의 대가와 비교할 때 통일 비용은 오히려 하찮은 것일 수 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구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어 드 메지에르가 한 말이다. 당장의 경제적 부담은 있지만 통일의 혜택과 편익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연초 '통일 대박론'을 제시하며 통일 담론에 불을 지핀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선배국가인 독일 방문(25~28일)을 통해 남북 통일의 미래상을 그리려 하고 있다. 1990년 동ㆍ서독 통합 이후 초기 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 통일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독일이야말로 한반도의 전범이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일 이전 대외정책 결정 때 전승 4개국 간섭을 받던 독일은 이후 대외 주권을 완전히 꿰차고, 분단시절 꿈꿨던 '정상국가'를 오롯이 복원했다. 독일은 이제 단순히 국제정치 무대에 복귀한 데 그치지 않고 유럽의 외교와 경제까지 주무르는 슈퍼파워로 우뚝 섰다. 통일 대박을 몸소 실천 중인 셈이다.
"크림반도 주민투표는 불법"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개 경고장을 날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발언은 정치대국 독일의 힘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2012년 남 유럽발 재정위기 당시에도 유럽 모든 나라들은 메르켈 총리의 입만 쳐다봤다. 독일이 돈을 푸느냐 마느냐에 따라 어떤 나라는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는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는 매몰차게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고 일갈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통일이 없었다면, 지금 독일이 누리는 위상 회복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독 24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독일의 성공을 극찬하지만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사실 독일 통일은 준비 안된 통합에 가깝다. 1980년대 말 동구권 제국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동독 주민의 대규모 탈출 사태가 터지자 서독 정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장밋빛 미래를 확신했던 동독 주민의 희망과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의 조급증이 빚어낸 타협의 산물이 독일 통일이었고, 당연히 흡수 통일로 귀결됐다. 심지어 동방정책을 추진해 통일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통일 직전에도 "통일에 대한 언급은 민족 앞에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독일 통일이 성공 모델로 전환하게 된 것은 분단 이후 국제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추진한 '통합 정책'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반도 통일의 기본 조건인 북핵 문제를 국제 이슈화하려 했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남북 통일은커녕 한반도 비핵화도 요원하다는 점을 간파한 것인데, 독일은 분단 기간 내내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콘라트 아데나워 전 서독 총리는 분단 직후 서독을 유럽경제공동체(EEC)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키며 서방 통합정책을 폈다. '서독은 전범 국가'라는 국제 사회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서독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믿음을 심어준 것이다. 하지만 브란트 정권 들어 서독은 동방정책으로 선회한다. 서유럽에서 확실한 기반을 닦은 만큼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분단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이어 1980년대 집권한 콜 정권은 서방정책을 주요 축으로 하되 동방정책을 심화시키는 실리외교를 지향하며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배가시켰고, 기회가 왔을 때 전 유럽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서독의 통합 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우리의 햇볕정책이나 대북 포용정책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동독과 달리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방정책은 동ㆍ서독을 넘어 유럽 분단의 벽을 낮추는 보다 큰 틀을 상정하고 있었다"며 "반면 과거 우리 정부는 이런 우선 순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동방정책의 결과물인 교류 협력만 강조하다 보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제정치의 틀에서 동유럽과 소통을 강화한 덕분에 자연스레 동독과의 관계도 진전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독일은 통일 이후에도 유럽연합(EU) 탄생의 기초가 된 마스트리히트조약(1991)을 주도하며 유럽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사회에 대한 구 서독의 진정한 호소 때문에 통일 과정에서 전승 4개국의 합의를 무난하게 받아냈다"며 "관련 당사국 설득에만 집중하느라 수년 째 답보 상태인 북핵 해법 논의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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