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 국민계정(잠정)'을 얼핏 보면 우리 경제가 다시 회복의 탄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3%대로 올라섰고, 1인당 국민소득(GNI)은 처음으로 2만6,000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통계 기준 변경과 환율 영향 등 여러 요인들 때문에 회복세가 부풀어진 측면이 적지 않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 국민소득 왜 높아졌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즉 경제 성장률은 3.0%에 달했다. 올 1월 발표했던 속보치(2.8%)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적용된 통계 개편의 효과일 뿐이다. 한은은 GDP 산정에 적용돼 온 품목별 가격과 가중치가 2005년에 맞춰져 있던 것을 이번에 기준연도를 2010년으로 바꿨다. 변화된 산업 구조를 반영하고, 국제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번 개편을 통해 K팝을 비롯한 음악, 드라마, 영화, 문학 등 창작품의 제작비와 기업 및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출이 새롭게 GDP에 편입됐다. 정부의 소비지출로 인식되던 전투함, 군함 등 일부 무기시스템도 자산으로 처리됐다. 통계에 잡히는 항목들이 확대되니 GDP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현상. 작년뿐 아니라 과거 성장률도 0.2~0.5%포인트씩 상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도 당초 한은 전망(3.8%)보다 높은 4%대 진입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1인당 국민소득이 작년(2만6,205달러)에 크게 늘어난 것 역시 통계 개편의 덕을 톡톡히 봤다. 2012년의 경우 당초 2만2,708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이 이번 개편으로 1,988달러 높아진 2만4,696달러까지 불어난 것을 감안할 때, 작년 국민소득 역시 2,000달러 내외 부풀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지난해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달러화 환산 국민소득의 증가도 한 몫을 했다.
더딘 회복세
이런 요인들을 배제하고 나면 우리 경제의 회복세는 매우 더딘 것으로 보인다. 벌써 8년째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 특히 2007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033달러를 기록했던 걸 보면, 6년간 증가율이 고작 14%에 불과하다. 환율 효과를 빼면 거의 제자리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계의 주머니 사정을 보여주는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을 보면 더 열악하다. 1인당 PGDI는 국민소득에서 세금 등으로 빠져나가는 정부 소득과 기업에 돌아가는 소득을 제외하고 순수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말하는데, 지난 해 1만4,690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의 56.4%에 불과하다. 40% 이상은 정부와 기업들이 챙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1.8%에 불과해 경제 성장률에 한참 못 미쳤다. 가계의 살림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장의 근간이 되는 설비투자의 부진도 뼈아프다.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1.5%.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7.7%) 이후 최저 수준이다. 국내 총투자율 역시 28.8%로 전년보다 2.0%포인트나 낮아졌다. 민간 소비도 지난해 2.0% 늘긴 했지만 정부소비 증가율(2.7%)에는 못 미쳤다. LG경제연구원 강중구 연구위원은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경기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결과"라고 평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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