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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위기] <하> 미국의 선택 그리고 아시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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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위기] <하> 미국의 선택 그리고 아시아, 한반도

입력
2014.03.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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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압박할 강경 카드 대신 최소한의 개입만 나선 美… 아시아 동맹국 우려 키워中, 사실상 푸틴 손 들어줘 미국의 견제에서 벗어날 전략적 기회로 활용할 듯"우크라 核포기로 영토 분할" 北 핵보유 의지 강해질 수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사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겉으로 강경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론은 고립주의로 흐르고, 전략가들은 현실론을 얘기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사태대응을 주도하고 있으나 러시아를 압박할 실효적 조치에 신중하다. 혼란스런 미국의 신중론은 해외 동맹국의 우려를 키우는 원인이다. 영유권 분쟁이 10여곳에 달하는 아시아에서는 우려 이상의 불안감이 높다. 과연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고, 힘에 의한 현상변경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의 전략적 기회가 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미국, 혼란스런 신중론

세계는 미국의 패권이 과거 같지 않거나, 오바마의 외교노선이 분명치 않다고 비판하지만, 미국은 이런 지적에 관심이 없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6%가 러시아에 대한 강경조치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또 공화당원, 민주당원 모두 이번 사태에서 미국의 최소한 개입 방안에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진보논객 E.J. 디온 주니어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깊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다시 해외 수렁에 빠지는 것에는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9ㆍ11사태 이후 두 차례 테러와 전쟁 이후 고립주의로 돌아선 미국 여론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제재를 강조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카드는 꺼내지 않는 것은 이런 여론과 무관치 않다.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와 적극적 개입주의를 단골 메뉴로 삼는 공화당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사태 초기 신냉전 구도의 견해와 전망을 많이 내놓았으나, 지금은 현실론이 주류를 이룬다. 크림반도 사태가 부활한 러시아와 미국, 푸틴과 오바마의 글로벌 주도권 충돌이란 분석은 적어도 미국에서 줄어들고 있다.

미국 내 이런 흐름들은 러시아의 군사력, 경제력에 대한 평가절하도 한 이유다. 위기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설립자 이안 브레머는 "러시아는 지난 20년 동안 군사ㆍ경제ㆍ외교와 인구학적 측면에서 영향력이 감소해 왔다"며 "크림반도 병합은 러시아의 힘보다는 위약함의 증거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제시되는 크림사태 해법들은 원상복구보다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즈그비뉴 브레진스키, 헨리 키신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우위를 인정하는 핀란드화를 제시했고, 하버드대 벨퍼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벨기에식 영세중립국을 제안했다.

미국이 넘어야 할 고민은 이번 사태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와 규범을 훼손시켜 미국 패권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크림사태는 거대한 글로벌 원칙의 문제"라며 "국경이 무력으로 변경되고 국제적으로 용인된다면, 수십 곳에서 영유권 분쟁이 진행 중인 아시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물었다.

중국이 맞는 기회

우크라이나 사태로 중국이 상대적으로 기회를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이번 크림반도 사건으로 발목이 잡혀 주춤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정 기간 유럽이나 중동의 미군 군사력을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데 제한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사실상 중국 포위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 숨 돌릴 시간을 벌게 됐다. 뉴욕타임스도 오바마가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따라 아시아의 군사력을 증강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아시아가 아니라 나토의 군사력 증강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의 찰떡 공조를 과시함으로써 중국의 몸값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은 크림반도 주민 투표 무효화와 관련,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투표시 기권표를 던졌다. 대결이 아닌 정치적 해결을 강구해야 한다며 중립을 지키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지만 사실상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게 국제 사회 평가이다. 중국과 러시아와 이심전심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미국은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중국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 구도가 다시 성립될 경우 미국의 견제를 덜 받게 될 것이란 점도 중국에겐 이득이다. 아직은 경제 성장에 힘을 더 기울여야 할 때인 만큼 이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은 가능한 한 다른 국가나 외부와의 갈등을 피하며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발목잡힌 아시아 재균형

아시아국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미국의 대응 수위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힘에 의한 우크라이나의 현상변경이 용인 된다면 중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크림 사태는 강 건너 불구경은커녕 유럽, 중동,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중동에 이은 유럽의 긴장 강화는 두 곳에서 군사력을 빼 아시아로 옮기려는 미국 전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럽의 평화, 중동의 전쟁종식이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전제가 흔들린 탓이다. 한마디로 오바마 정부는 유럽에 추가개입을 할 경우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공백이 생기고, 반대로 크림사태를 방관하면 무력에 의한 국경변경을 용인하는 딜레마에 처한 모습이다.

아시아국가들을 불안케 하는 것은 중국이 러시아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는 측면도 크다. 양국은 패권추구, 민족주의, 국제질서를 무시한 확장주의 움직임에서 공통된다. 중국은 지난해 말 방공식별구역(ADIZ) 확대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경제산업 측면에서 쇠퇴하는 군사강국인 러시아와는 다르다. 이안 브레머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지적하며 "중국이 러시아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 내 미국과 중국의 입지가 역전된 마당에 중국이 언제든 공세적 확장주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 친서를 보내 중국 달래기에 나서는 한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난 아시아 정상들을 4월에 다시 찾는 것은 이런 중국 우려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 등 국내문제를 이유로 외부세력과는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에 미국은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크림사태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도 악재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으로선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대가가 영토 분할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핵보유에 대한 더욱 강한 의지를 내비칠 수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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