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뛰고 있다. 잡지 발행과 별개로 매주 한 번씩 인터뷰 기사를 쓴다. 느긋한 리듬으로 잡지를 발행했던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일주일에 한 번 인터뷰를 섭외해 발행하는 일정이 꽤 빡빡하게 느껴진다. 마음도 팍팍하다. 상대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하는 게 누적되다 보니 자존감이 깎인다. 나란 존재가 남한테 환영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고, 내가 상대에게 귀찮게 굴었던 것 같아 미안해지고,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 쓰려고 해도 쓸 데가 없는 존재 같고….
땅굴을 파고 있다. 멈춰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건 '정신승리'다. 정신승리는 나쁜 상황에서 애써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점을 찾아 정신적인 안위를 얻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온라인에서 쓰인다.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일 때가 많지만, 나는 정신승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 정신승리를 '시전'하느냐가 문제다.
타산지석을 해보자. 정신승리를 습관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정신승리에 대해 좀 안다 싶은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루쉰의 소설 의 주인공 아Q를 꼽을 것이다. 아Q는 동네 깡패에게 두들겨 맞고 꼬마들에게 놀림 받지만,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내가 정신적으로는 니들보다 나으니까 정신적으로는 내가 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게 정신승리 해놓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폭력성을 드러내고 희롱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정신승리의 조건'을 도출할 수 있겠다.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한테 관대한 사람은 남한테도 관대해야 하고, 자기가 당했을 때 싫은 일은 남도 싫을 거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남을 깎아 내리며 스스로의 멘탈을 보호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나쁜 정신승리를 하는 대표적인 집단으로는 '일베(일간베스트)'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자신이 일베 유저라는 걸 밝히고 '그런 남자'라는 곡을 발표한 가수 Bro는 "(일베는) 애초에 히키코모리 싸이코 병신들 이야기를 모아놓은 곳에서 시작됐고 우리가 진정 와 닿는 이야기는 서로의 병신짓을 사이 좋게 비웃으며 정신승리하거나 '김치녀'들 까는 게 아니겠노" 라고 일베의 게시판에 썼다 지웠다. 스스로를 '히키코모리'에 병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이들이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배제당한 경험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배제 당한 것을 특정 지역과 여성의 탓으로 돌리며 혐오를 담아 조롱한다는 것. 기술의 발전과 금융업의 발달로 고용 없이 경제수치만 높아지고 있고, 자원의 분배가 적절히 이뤄지고 않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식의 오류다. 거시적인 구조를 보지 못하고 잘못된 인식으로 특정 집단에 과도한 공격성을 띄는 것은, 당연히 나쁜 정신승리다.
결국 자존감 문제다. 낮아진 자존감은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공격하게 만들기 쉽다. 비록 약점을 가지고 있고, 실수나 실패를 했지만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신해야 한다. 나는 인터뷰에 거절당했지만, 상대가 인터뷰를 하지 못할 개인적 상황이 있었던 것일 뿐 나란 존재를 부정당한 건 아니다, 그러니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을 원망할 것도, 자기 자신을 싫어할 것도 없다. 또 이 기회를 통해 인터뷰 섭외 기술이나 태도도 성숙해졌을 것이다…,고 정신승리 했다. 정신승리하고 멘탈을 채비한 뒤, 다른 사람에게 다시 인터뷰 요청 했다. 요청을 받아준 사람이 나타났다! 자존감이 높아졌다.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의 보존을 위해 사소한 성취를 얻고, 그걸 근거로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방법을 권한다. 일베를 비롯해 '나쁜 정신승리'를 하는 사람들도 사소한 성취(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공격했더니 상태가 발끈했다, 같은 건 성취에 포함시키지 말자)를 이루고, 자존감을 챙기고, 자기연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다들 사는 게 힘들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는 소리다. 힘든 일상을 버텨나가고 있는 서로에게 '특급칭찬'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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