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에서 개나리가 핀 걸 보았다. 담장 위에서 가지를 늘어뜨린 개나리들이 노란 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담장 아래 쭈그리고 앉아 알이 밴 칡뿌리를 잘근잘근 씹고 싶었다. 머릿속이 노래져서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소용없어 개나리 핀 길을 걸었다. 노란 머릿속 물이 빠져나갈 때까지 걸었다. 그 사람과 만난 시절, 오후 시간의 길이 펼쳐졌다.
노란 스쿠터를 구해 타고 다녔다. 노란 스쿠터가 뿜어내는 휘발유 냄새가 좋았다. 차가 안 다니는 길을 골라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휘발유 냄새가 머릿속을 맑게 헹궈주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평창동 꼭대기로 올라가 살았다. 북한산이 내다보이는 3층짜리 건물은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마당엔 거대한 돌부처가 서 있었다. 3층엔 그대로 불상들이 모셔져 있고, 1층엔 전직 스님이 오른쪽 볼 근처에 호두 알 크기의 혹을 달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1층과 2층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밤낮을 지새우고 있었다. 스님이던 시절에 타고 다녔을 SUV 차량이 철대문 옆에 방치되어 있었다. 보일러는 고장 났고 수도관이 터져 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직 스님이 기거하는 1층에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하나 있었다. 나는 푸른 호스를 연결해 2층까지 물을 끌어다 썼다. 욕탕에 물을 채우면 언제 것인지 곱등이 시체가 떠올랐다. 창문마다 쳐진 커튼들은 두꺼웠고 무거웠다.
그해 겨울엔 사무치도록 눈이 내렸다. 가스난로와 전기난로를 켜놓고 자줏빛 소파에 웅크리고 누우면 눈보라 치는 골짜기를 헤매는 사람이 되었다. 창문에 채찍을 갈기던 아까시 나뭇가지들. 소름끼치는 울음을 울던 천장 위의 도둑괭이들.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다가와 쉴 새 없이 얘기를 들려주던 얼굴뿐인 귀신. 나는 신발장 위에 손전등을 비치해 두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냉기와 음습한 냄새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하루는, 안에서 잠긴 방안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방 하나만을 쓰고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방문 앞에 소파와 테이블을 가져다 놓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밖에 자물통을 달았다. 물소리는 잠잠하다 밤이 깊으면 재발하는 치통 같았다. 물방울은 바닥에 떨어져 비웃는 소리로 바뀌었다. 알루미늄 새시 창문들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덜컹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이 쌓여 푹푹 빠지는 길을 더듬어 내려갔다. 성곽 같은 단독주택 담에는 감시카메라가 작동되고 있었다. 나는 언덕 아래 버스정류장 근처 슈퍼로 내려갔다. 나는 병이 푸른 서울막걸리와 봉지 김치, 사발라면을 사러 다녔다.
거실은 텅 빈 헛간이었다. 거실엔 30촉 전깃불이 켜져 있었다. 눈보라가 빗금을 긋고 있었다. 눈보라의 스케치는 끝이 없었다. 들판 건너의 외딴집 불빛처럼 밤새 흐릿했다. 겁이 많은 나는 다른 방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 푸른 서울막걸리 병을 비워나갔다. 김치와 사발라면은 금세 독이 났다.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된 나무상자를 꺼내왔다. 언젠가 제자가 대학에 들어간 기념으로 가져온 것이다. 나무상자엔 사슴뿔이 얇게 썰려 담겨 있었다. 그걸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나는 밤잠이 없는 쥐가 되어 있었다. 마른 녹각을 부셔먹었다.
어느 날 슈퍼 옆에 세워둔 노란 스쿠터가 사라졌다. 쇠줄로 뒷바퀴를 잠갔는데 어떻게 가져갔을까. 안장을 젖히면 좁다란 트렁크가 있고 거기에 수건을 넣어 다녔다. 안장의 먼지를 닦아 시커멓게 변한 수건. 나는 그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주머니 속 스쿠터 키를 매만지곤 했다.
그가 서 있던 방앗간 앞 버스정류장. 그로 인해 버스정류장 근처는 눈부셨다. 내 마음은 방앗간 핏대를 돌려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그가 없는 자리에 투명한 그를 세워놓았다. 이번 생에는 완성할 수 없는 사랑이 있고 그때는 완성할 수 없는 소설이 있었다. 거기 벽이 있다 알려주는 개나리가 담장에 피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의 옷이, 그와 만난 시절의 끝없는 길이 펼쳐졌다.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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