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에 관계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와 인턴십 경력을 요구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을 강요하고 있어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는 올해 신입생부터 학사관리 시스템 '드림패스(Dream PATH)'를 의무 적용했다. 드림패스는 학생 개인별로 강의 수강이력, 어학시험 성적, 봉사활동 시간 등을 분석해 진로를 제시하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강화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신입생들은 4학기 안에 ▦일정수준 이상의 어학시험 성적 획득 ▦공통교양 28학점 이수 ▦64시간 봉사활동 등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를 채우지 못하면 5학기 수강신청이 일부 제한되고, 최종적으로는 졸업도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취업할 의사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취업 준비를 시키는 드림패스를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학 가정교육과 신입생 최모(18)씨는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범대 학생들에게는 토익 점수가 필요 없는데도 드림패스 때문에 토익 700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며 "쓸데 없는 곳에 많은 시간을 뺏기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웅진(25ㆍ식품공학과4)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은 "동국대에는 순수예술을 전공해 취업을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며 "모든 학생의 꿈이 취업이 아닌데 이를 강요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17일부터 드림패스 의무화 폐지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닷새 만에 재학생 1만3,000여명 중 6,700명의 서명을 받았다. 25일 낮 12시에는 학생 80여명이 '죽어버린 대학의 자유'에 애도를 표하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동국대 본관 앞 팔정도 광장에 모여 수초간 굳은 자세를 취하는 플래시몹도 펼쳤다.
동국대 관계자는 "드림패스는 다른 대학들의 졸업인증제도와 같이 교양, 외국어, 인성 등 자신의 역량을 진단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취업 준비를 1, 2학년 때부터 의무화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주요 대학들은 졸업 요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어 점수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 취업에 초점을 맞춘 졸업 요건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문제다. 한양대는 지난해 신입생부터 인턴십을 졸업 요건으로 의무화해 대학이 취업 지원을 넘어 취업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양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인턴십 의무제 시행 1년이 지났지만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인턴 자리가 많지 않은데다,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돕는 등 대체 방안들도 내실 없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올해부터 졸업 요건에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 이상'을 추가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이 학생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교육부의 각종 재정지원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대학들이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학교와 학생에게 모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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