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의 목표는 기껏해야 최대 공약수다. 최소 공배수가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취임 후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지만 특별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양국은 과거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한일 정상 모두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다.
기대치는 낮지만 회담의 효과가 한일관계 개선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25일 "이번 회담은 백마디 말보다 한 순간의 표정이나 제스처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그간 국제회의에서 여러 차례 만났지만 눈길 한번 제대로 주고 받지 않았다. 한일간에도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문제 등을 놓고 외교전쟁 수준의 열전을 벌였던 만큼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계기로 한 한일 정상의 대면은 일단 양측이 다소 냉정을 되찾는 계기를 갖게 됐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는 회담 성사과정만 보더라도 그랬다. 이번 회담이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우리 측이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따름이다. 이는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일본 측이 취했던 조치, 즉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이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룰 한일 국장급 협의 정도로는 우리 측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회담 의제가 3국 공통과제인 북핵 문제에 사실상 한정된 점만 보더라도 그렇다.
따라서 한일관계는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가 더 문제다. 박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강조한 것도 아베 총리에 대한 사전 경고 뜻으로 볼 수 있다. 역시 최대 현안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다. 박 대통령이 올해 3ㆍ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55명의 숫자를 직접 거론하며 일본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할 정도로 시급한 과제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제쳐두고 일본과 다른 이슈를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면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상황은 더 꼬일 수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일방의 요구대로 해결되기는 어렵고 한일 양국간 어느 선에서 정치적 타협이 가능할 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등 한미일 정상회담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이거나 독도영유권 주장 등 예정된 다른 도발카드를 꺼낸다면 한일 관계 회복은 난망하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대면한 만큼 일단 한일 외교당국의 후속 움직임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4월 하순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일본도 과거사 도발을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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