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부동산관리업을 하는 A사는 다음달 재계약을 앞둔 고객으로부터 최근 다른 관리업체와 계약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A사가 지난달 주택임대관리업체로 등록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로 인해 임대소득이 드러나게 됐기 때문에 미등록 업체로 계약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주택임대관리업 등록을 한 B사는 고객들로부터 관리비를 깎아달라는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세금을 더 내게 된 만큼 부담을 나눠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B사 대표는 "등록 이후 신규 계약이나 문의가 완전히 끊기고 기존 고객들은 동요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등록을 한 회사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을 전문적으로 임대 관리하는 산업을 육성하려는 취지로 '주택임대관리업 의무 등록제'가 시행한 지 50일이 지난 현재 솔선수범해 등록한 업체들만 손해를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등록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미등록 업체 단속을 강화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7일부터 주택법 개정을 통해 ▦자기관리형 100호 이상 ▦위탁관리형 300호 이상을 관리하는 업체는 반드시 주택임대관리업자로 등록하도록 하고,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2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임대관리업 의무 등록제 시행 이후 전국 19개 업체가 주택임대관리업 등록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등록 임대관리업체의 경우 위탁한 고객의 임대소득이 자동으로 신고가 된다는 점이 제도 조기정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의무화 이전에도 이런 문제로 인해 등록 업체가 별로 없을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 또 등록 업체 중에도 롯데자산개발, 마우나오션개발(코오롱), 신영에셋 등 대기업 계열사 등 향후 사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우선 등록만 해둔 경우가 절반에 가깝다. 현재 임대관리업을 하고 있는 등록 업체는 라이프테크, 우리레오PMC, 플러스엠파트너스 등 10개 안팎에 불과하고, 이 회사들은 이미 공개적으로 임대사업을 해온 터라 등록이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지난달 26일 전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밝히면서 임대인들의 공포에 기름을 부었다. 19개사 대부분은 정부 발표 이전에 등록을 마친 회사들. A사의 관계자는 "정부의 발표를 알았더라면 등록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미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가 막심한 등록 업체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승국 라이프테크 대표는 "서울 강남만 해도 오피스텔 등에 사무소를 차리고 수백 가구 이상의 임대 관리를 하는 미등록업체가 수두룩하다"며 "지방이나 원룸촌 등의 경우 공인중개업소들이 시설관리까지 병행하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등록한 업체는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임대 관리업을 양성화해 부동산시장의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하려던 제도의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기존 임대시장 자체가 음성화돼 있어서 등록제도 도입 시 부작용을 최소화할 장치가 미리 준비돼 있어야 했다"며 "관리수수료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나 임대주택 등록 시 상속·증여세 과표 구간을 낮추는 등 등록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장 공인중개업소 등 미등록 주택임대업체를 전수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등록과 제재 권한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단속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