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근처에는 크고 작은 빌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어요. 각자의 빌딩에만 머물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자신의 생각을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했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부담 없이 모여 만드는 동네 잡지 는 '일터도 마을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삭막한 주거지 대신 매일 같은 시간 출근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를 '동네'로 간주한 것.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시청역'과 '동네'를 조합한 잡지 김현정(31) 편집장은 "나와 같은 역을 통해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면 일상이 좀더 재미있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바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내려놓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20~30대 직장인으로 뭉뚱그렸지만 참여하는 회원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1년차 신입부터 6년차까지, 대기업 직원에서부터 공무원, 연구원 등 연차도 하는 일도 천차만별. 직장인들이 주축이다 보니 정기 모임은 자연스럽게 점심시간으로 정해졌다.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어 잡지 제작은 다소 느리게 진행된다. 일주일 한번 점심에 시청역 근처 카페나 음식점에 모여 글을 모으고 다듬어 잡지에 싣는 식이다. "잡지 자체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김씨의 말처럼 회원들은 동네 잡지 이름에 걸 맞는 사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점을 둔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한 주에 한 번 꼴로 쌓이면서 지난해 10월과 12월에 6~7페이지 분량 잡지 두 권이 나왔다.
지난해 5월 2~3명이 모여 시작한 모임은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참석자가 늘었다. 현재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열명 남짓. 회원들은 "무겁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나누면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이 모임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운영진으로 참여하는 정지연(31)씨는 "직장에서는 직급에 따라 각자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보니 대화 주제가 한정돼 있지만 이곳에서는 새로운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 생활에 활력이 된다"고 말했다. 회원 김찬솔(27)씨도 "잡지를 통해 시청역이라는 공간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아가고 있다"면서 "출퇴근 하기에 바쁜 직장인들에게 단 몇 분이라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잡지가 됐음 좋겠다"고 전했다.
일터라는 공간으로 연결되다 보니 직장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나 아이디어가 그대로 잡지에 반영된다. 4월에 나올 3호 잡지의 주제는 '연장'. 직장에서 여러 가지 도구로 쓰이는 자신들을 연장에 비유, 각자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자는 취지다. 김씨는 "처음에는 모이기는 할까라며 걱정했지만 어느 순간 주민 반상회처럼 친근한 모임이 됐다"면서 "더 많은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서 전시를 여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궁리 중이다"고 말했다.
4월 발간될 3호는 시청역 근처 카페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홈페이지(wwww.citylunch.c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글^사진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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