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해외입양을 과격하게 성토하는 분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동석한 이들 중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복한 가족을 얻는 게 아이에게 더 낫지 않나요?" 대체로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나를 포함해 다들 입양과 관련된 경험이 없는 터라 거기까지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런 생각이 얄팍한 지레짐작임을 깨달은 건 이라는 만화를 읽고 나서였다. 지은이는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융 헤넨. 다른 이름 전정식. 그를 식구로 받아들인 부부는 품이 넓은 이들이었던 것 같다. 친자식들과 '꿀색 피부'의 새 아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혼냈다. 아이들 역시 검은 머리의 새 형제와 뭉쳐 놀고 사춘기의 비밀을 공유했다. 하지만 가족의 품이 아무리 아늑해도 그는 '다른 생김새' 탓에 버림받은 존재라는 우울한 사실을 늘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옮겨간 땅이 더 기름지고 돌보는 손도 정성스럽지만, 그 땅에 어떻게 뿌리 내려야 할지 알 수 없는 깊은 결핍감. 양부모 역시 사랑을 듬뿍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 결핍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대와 차별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떻게도 진정시킬 수 없는 그 마음 때문에 많은 입양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 했다고 한다. 숙연해진다. 딱한 처지에 몰린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돌보아야 하나.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만 할 큰 숙제인 것 같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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