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G2(주요2개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 번째 만난 두 정상은 덕담과 웃음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 마치 G2 협력시대를 연 듯했다. 미국이 러시아 압박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데 따른 우크라이나 효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이끈 쪽은 중국의 협조가 다급한 오바마였다. 그는 중국을 방문 중인 부인 미셸과 두 딸에 대한 환대에 감사를 표하고 탁구 얘기를 꺼냈다. 오바마가 "과거의 고위급 핑퐁외교는 아니지만 미셸도 (중국에서) 탁구를 쳤다"고 말하자 웃음이 쏟아졌다. 시진핑이 "베이징을 떠나올 때 만난 미셸이 남편에게 공식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응수하면서 회담장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시진핑은 G2 협력시대를 상징하는 오바마의 친서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바마의 친서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와중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은 서신에서 오바마가 "(중국이 제안한)신형대국관계 구축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언급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오바마의 친서와 정상회담 분위기로 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러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 국무부가 두 정상의 발언록을 배포하며 '협력강화, 갈등 지양'이란 제목을 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역할확대에 나설 경우 미국이 어떤 대응을 할지에 벌써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담성과만 놓고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실패에 더 가깝다. 별도 성명서가 나오지 않았고, 오바마가 3가지 의제로 제시한 북한 비핵화,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합의된 내용도 없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국가원수들이 만나는 정상외교는 성과로만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이번 회담을 평가했다. 중국 신화통신이 "양국 정상이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했다"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 양국 언론들도 호의적으로 회담내용을 보도했다.
최대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 대해 시진핑은 유일한 해법이 대화라고 강조했고, 오바마는 대화를 위한 북한의 사전조치를 요구했다. 시진핑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고 정확한 길은 대화로 시작해 대화로 성과를 내는 것"이라며 "북핵 6자 회담을 하루 빨리 재개, 9ㆍ19 공동성명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에 중대한 관심이 있으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 각국과 밀접한 소통과 협조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6자회담국 사이의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북한이 취하는 행동들에 근거해야 하며, 북한은 아직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말했다. 두 정상은 6자 회담 재개를 놓고 방법론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으나, 북한 비핵화라는 원칙은 재확인했다. 시진핑은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의 주권 존중을 강조하는 것으로 오바마의 체면을 세워줬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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