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바라보는 국민의 법 감정이 끓고 있다. 49일 간의 노역으로 254억원의 벌금을 모두 털 수 있을 정도라면 법원이 '일당(환형유치금)'을 너무 높게 책정한 것 아니냐는 비난의 눈길이 두드러진다. 최근 들어 일반인의 환형유치금이 1일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1일 5만원의 결정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1만 배에 이르는 금액이라면 관대해도 너무 관대하다는 세평을 사고도 남는다.
안 그래도 벌금형은 수형자의 재부(財富)에 따라 형벌의 효과가 달라지고, 돈 많은 사람에게는 일반ㆍ특별 예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등의 한계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단 하루의 노역도 견디기 어려워하는 부자 특유의 심리적 부담감을 근거로 거액의 벌금형은 작지 않은 형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루 5억원이라면 어지간한 부자는 벌금을 낼지, 청소나 제초작업이 고작인 노역으로 때울지를 고민하기 십상이다. 23일 시작된 허 전 회장의 환형유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2011년 12월 허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이 확정되는 순간 이미 예고됐다. 벌금 또는 과료를 선고할 때는 납입하지 않을 경우의 유치(환형유치) 기간을 정해 동시에 선고한다. 그에 따라 선고된 기간이 고작 49일이다. 1심 재판부가 '1일~3년'의 넓은 범위 안에서 최단기 가까운 곳을 택했고, 항소심에서 벌금 508억원이 절반으로 깎였지만 유치기간은 그대로였다. 처음 2억5,000만원이던 '일당'이 '5억원'으로 늘어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49일의 유치기간으로 벌금형의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생활인 감각으로 고민한 흔적이 희박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다. 이번 일이 벌금형 제도의 개선 논의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불법과 책임에 따른 일수(日數)와 수형자의 경제력을 감안한 '일수 정액'을 따로 떼어 벌금형을 선고하는 일수벌금형제도 등에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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