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불신하는 유형의 기사가 있다. '뭐는 뭐에 좋더라' 또는 '뭐는 뭐에 나쁘더라' 식의 기사다. 최근 것 하나만 보자. 초콜릿과 와인, 그리고 딸기 등을 많이 먹으면 제2형 당뇨병(인슐린 부족)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뉴스가 있었다. 여기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걸 많이 섭취하는 것이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뇨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이런 음식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 걸까. 한 트럭? 두 트럭?
그런데 또 다른 기사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초콜릿에는 지방과 당이 많이 들어있어 과다하게 섭취하면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또 딸기 같은 과일에는 혈당을 급격하게 높이는 과당이 많아서 식후 먹는 과일은 당뇨병이나 지방간을 부르는 독(毒)이라고.
특정 음식에 함유된 한 두 가지 성분만으로 '어디에 좋다'거나 '어디에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편향되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식이면 세상에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인스턴트 식품조차도 몸 어딘가에는 좋지 않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오류가 비단 음식에 한정된 것일까. 따져 보면 우리는 일상 생활 곳곳에서 이런 오류를 범하며 산다.
최근의 규제개혁 열풍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며칠 전 국민들에게 생중계된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는 공적(公敵)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너도 나도 한 목소리로 없애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천송이 코트'(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이 입은 코트)를 중국인들이 살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며, 7,000억원이 넘는 전자상거래 국제수지 적자의 원흉이라고 했다. 정부는 즉각 나섰다. 곧 외국인들이나 해외 거주자들은 이것들 없이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여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내국인 역차별론이 제기된다. 어떤 신문은 사설에서 외국인들에게만 공인인증서를 없애줄 것이 아니라 내국인들에게도 공인인증서를 없애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결제에서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참에 전봇대를 통째로 확 뽑아버리자는 것이다.
수긍할 대목이 없는 건 아니다. 공인인증서가, 특히 액티브X가 얼마나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지 나도 잘 안다. 액티브X 때문에 악성 바이러스가 유포될 위험성이 더 커진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주장은 불과 얼마 전까지의 논리와는 영 딴판이다. 카드사에서, 또 통신사에서 잇따라 대규모 정보가 유출되면서 지금까지의 공론은 "보안을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더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인터넷뱅킹 이체한도를 대폭 줄이고, 금융거래에서 공인인증서 사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심지어 텔레마케터들의 생계를 위협하면서까지 TM 영업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것도 "보안 강화를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의문이 든다. 만에 하나, 정부가 이런 규제를 풀어준 뒤에 대형 불법 결제 사고가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을 질까. 지금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를 무조건 없애야 한다던 여론은 그때는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음식이 그렇듯 규제에도 좋은 측면, 나쁜 측면이 공존한다.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사는데 공인인증서가 독이라더라" "푸드트럭 허용이 영세 상인에게 득이 된다더라" 식의 일방적인 몰아가기는 위험하다. "잠깐만요"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앞뒤 재지 않고 규제를 풀기보다는, 시스템의 몫으로 넘겨야 한다. 풀어도 풀어도 규제가 줄어들지 않는 게 단지 관료들의 밥그릇 챙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영태 경제부 차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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