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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오스카'를 품은 흑인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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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오스카'를 품은 흑인남녀

입력
2014.03.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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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주연상! 할 베리!"

진행자의 발표에 객석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화려한 갈색 발렌티노 드레스로 몸을 감싼 여배우 할 베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대로 올라섰다. 크고 놀란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2002년 3월 25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반란 아닌 반란이 일어났다.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배우들이 나란히 남녀주연상을 차지한 것이다.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과 '몬스터 볼'의 할 베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무대에 오른 할 베리는 "여기까지 오는데 74년이 걸렸다. 앞서간 모든 유색 여배우들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스아메리카 출신으로 2000년 영화 '엑스맨'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몬스터 볼'에서 사형수 남편의 형 집행관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백인남자를 사랑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열연해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남우 주연상은 영화'트레이닝 데이'에서 노련한 악질 형사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에게 돌아갔다. 트로피를 높이 치켜 올린 그는 객석에 앉은 노장 배우 시드니 포이티에를 가리키며 "지난 40년간 시드니를 추구해 왔다. 오늘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며 감격해 했다. 1963년, 영화 '들에 핀 백합'에 출연해 흑인배우로 첫 오스카상을 수상한 포이티에 이후 40여 년 만에 워싱턴이 두 번째 남우주연상 수상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이 날 아카데미는 온통 흑인들의 잔치였다. 시상식 사회자는 코미디언 겸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였으며 75세의 포이티에는 공로상을 수상했고 권투 영화'알리'에 출연한 윌 스미스는 남우주연상후보에 올라 흑인끼리의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역대 아카데미는 대체로 흑인들에게 바늘귀만큼 어려운 관문이었다. 1939년, 해티 맥대니얼이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유모역을 맡아 처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래 지금까지 연기상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한 흑인배우는 1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우주연상은 2002년 덴젤 워싱턴 이후 '레이(2004)'의 제이미 폭스와 '라스트 킹(2006)'의 포레스트 휘태커가 그 명맥을 이었지만 여우주연상은 할 베리가 유일하다.

2014년 3월 2일 열린 86회 아카데미는 마침내 흑인감독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영국출신 흑인감독 스티브 맥퀸이 연출한 '노예 12년'이 강력한 경쟁자였던 '그래비티'를 제치고 영예의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다.

아카데미 트로피를 보고 협회 도서관사서가 "오스카 삼촌과 닮았네"라고 한 말이 신문 칼럼에 언급되며 이름 지어졌다는 '오스카상'이 내년에는 어떤 배우의 품에 안길지 기대된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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