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제기됐던 '해외여행 면세한도 인상'이 규제개혁을 진두 지휘해야 할 기획재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주춤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1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세한도 인상을 건의한 만큼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8년 전 결정된 현재 면세한도(미화 400달러)가 너무 낮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것.
하지만 기재부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이 문제와 관계된 한 기재부 직원은 "대통령 회의에서 나온 사안이니 검토는 하겠지만, 기존의 인상 반대 방침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가 그 동안 내세워 온 반대 근거는 ▦세제상 형평성 ▦세수 감소 ▦면세제도는 규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계자가 털어놓은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여론'이었다. 정부가 "세금을 엄격하게 걷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면세한도를 인상하는 것은 해외 여행객에게 주는 특혜로 비쳐질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면세한도가 경제 수준이나 국민 기대보다 낮은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상하겠다'고 하면 반대 여론이 고개를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계자의 말대로 우리나라 면세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200~300달러 낮다. 한국 여행자 면세한도는 1996년 현재 한도인 미화 400달러로 바뀐 뒤 변함이 없었다. 이는 2010년 기준 OECD 32개 국가 중 4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이 속한 1인당 국민소득 2만~5만 달러 국가군(19개국)의 면세한도 평균은 704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1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민소득 증가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을 고려해 면세한도를 최대 1,000달러까지 올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해결해야 할 수많은 규제개혁 과제 중에 '해외여행 면세한도 인상'은 해결하기 쉬운 과제에 속한다고 본다. 규제개혁 과정에 저항할 기득권층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재부가 아직 표면화하지도 않은 반대여론이 두려워 이 정도 규제개혁을 주저하는 소극적 자세를 고치지 않는 한 이번 정부의 규제개혁도 '공염불'로 끝나게 될 것이란 지적이 많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