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계기로 벌금 대신 노역을 하게 하는환형유치(換刑留置) 제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고액 일당 책정의 이면에는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재판부의 편향된 판결뿐 아니라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자 대법원은 법 개정 작업에 나섰다.
허 전 회장에 대한 '봐주기' 정황은 2008년 9월 검찰의 구형에서부터 감지됐다. 당시 검찰은 그룹계열사에 508억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허 전 회장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벌금에 대해서는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조세범에게 징역과 벌금을 함께 부과하는 병과형의 경우 법원이 '형이 과하다'며 벌금에 대해 선고를 유예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하고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하루 노역 대가를 2억5,000만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이후 2010년 1월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형사1부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허 전 회장의 하루 노역 대가를 5억 원으로 책정했다. 벌금은 절반으로 깎아주고 노역 일당은 2배로 올려준 셈이다.
재판부는 당시 "벌금이 지나치게 고액인 점을 선고유예의 주요 참작 사유로 삼는다면 조세포탈의 규모가 클수록 선고유예 가능성이 커지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엄벌 의지를 밝혔지만 허 전 회장의 '몸값'을 올려주면서 특혜 시비를 낳았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를 바로잡을 기회인 상고를 포기했다.
이 같은 비상식적인 몸값 판결이 나온 데는 벌금 미납자가 노역장에서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기간을 '1일 이상 3년 이하'로 규정한 형법(69조)을 근거로, 재판부가 유치기간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피고인의 하루 수입액 등을 감안한다지만 이는 법관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현행 벌금제도를 감안하더라도 법원이 허 전 회장의 일당을 너무 높게 책정했다는지적이 높다. 2008년 탈세 등의 혐의로 벌금 1,100억 원이 선고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노역장 일당은 1억1,000만원이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환형유치 조항은 매년 논란이 됐지만 이번엔 너무 심했다"며 "환형유치 조항을 적용 받는 피고인을 특정하거나 조건을 세부적으로 정하는 등 입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원이 환형유치를 재벌들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로 활용하는 바람에 스스로 전관 변호사를 앞세운 대형 로펌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허 전 회장이 벌금 사건 등을 의뢰한 변호인 중에는 광주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가 포함돼 있다.
재판부의 재벌 몸값 올리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대법원은 개선안 마련에 착수했다. 윤성원 대법 사법지원실장은 "환형유치와 관련해 노역 일당뿐만 아니라 유치 기간까지 포함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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