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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3월 25일] 한국 대학의 헬게이트

입력
2014.03.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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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 새 학기를 맞았지만 한국 대학의 현실에는 '춘래불사춘' 같은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지난 1월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안과 그 실행조치로 시행될 '특성화사업'이 대부분의 대학들에게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지금부터 10년 안에 학생 정원을 16만 명 줄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어떤 대학과 학과들이 도태되어, 대략 정규직 교수 1~2만 명, 정규직 교직원 1만명, 비정규교수 3만명 정도 해직될 위험에 놓이게 될 거라는 계산도 있다. 당장 대학들은 2,3년 사이에 정원 10~20%를 감축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과연 어떤 대학과 학과들이 없어질까? 그리고 이런 일이 우리 고등교육과 사회 전반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까? 거의 재앙에 준하는, 이제껏 보지 못한 희한한 일들이 대학가에서 연달아 일어날지 모른다. 이미 황폐화되고 있는 대학문화는 더 기괴한 양상을 띨 것 같다. 대학과 학문의 자율성은 급격히 위축되고, 살아남기 위한 이런저런 '비정상'적 행태가'정상'인 것처럼 둔갑할지 모른다.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나 취업할 기회도 줄어들어 대학원에서 학문을 하며 살아가려는 후속세대는 더욱더 줄어들 것이다. 교원뿐 아니라 더 '힘없는' 교직원들과 비정규직 교수들은 단 한 마디도 자기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쫓겨나 실업자 신세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지금 당장, 기존의 단과대학과 학과 체계가 해체되고, ITㆍ융합학, 무역과 금융, 문화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업 등을 중심으로, 또 이들 분야가 인문ㆍ사회과학 학과들을 잠식하거나 통폐합하는 방식의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이런 개편은 대개 사회적 수요에 즉자적으로 적응한 결과이지 결코 먼 미래를 내다본 것은 아니다.

대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고 방만하게 운영되어온 일부 대학들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절차와 방향이다.

첫째 교육부의 총론과 그에 대한 절차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벌어진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양상은 거의 없었다. 백년대계는커녕, 계수에 맞춘 정부의 밀어붙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는 파행이 대부분이었다. 현재의 개혁안도 단순히 학령 인구수의 감소 이외에 어떤 제대로 된 '철학적ㆍ교육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또 그 결과나 효과가 무엇일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결과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한 진지한 공청회나 토론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교육부의 '설명회'가 있을 뿐이다.

둘째, 대학을 줄인다는 것은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이나 연구ㆍ개발의 힘을 감소시킨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는지? 사회적 수요와 학문적 요청은 인구 변화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원이나 연구인력은 취업률이나 학부 교육 수요와 무관하게 필요하다. 특히 대학 내의 인문ㆍ사회과학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합의도 필요하다. 대학 바깥에선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 구조조정 때문에 인문ㆍ사회과학 전공교육은 벌써 심각하게 황폐화되고 있다. 한국 대학은 이미 프랑스ㆍ독일ㆍ러시아 관련학, 철학ㆍ종교학은 물론 아시아ㆍ남미 지역학, 서양사학, 인류학, 북한학 등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책상 위 계수와 근시안적인 기업 논리에만 휘둘리는 대학개혁은 사회적 자해행위가 될 수도 있다.

요컨대 대학의 공공성을 위해 국가가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좋은 고등교육 정책만이 대학들과 사회가 진정 함께 살 길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생각은 다시 다듬어져야 하고, 지역ㆍ시민사회ㆍ대학 구성원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합의와 결정의 단위가 필요하다. 거기서 세계화와 학벌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한 공공적인 대안이 다시 도출돼서, '느리게' 집행되기를 바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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