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조치에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의 대러시아 제재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대러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지원 및 대러 제재 문제를 논의하고,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거론할 게 확실시된다.
서방 세계는 이미 제재 조치를 속속 내놓으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 등 러시아 정부ㆍ의회 인사 7명의 자산을 동결(17일)한 데 이어, 21일에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러시아 관료 16명과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러시아 재벌 4명에 대해 자산 동결과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유럽 각국도 비자면제 협상 중단 수준에 머물렀던 대러 제재의 강도를 21일 크게 끌어 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 제재 대상을 33명으로 늘리는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 러시아의 회원자격도 정지시키기로 했다. 또 6월로 예정된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정상회의도 취소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달 소치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할 정도로 대러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지만 최근 ▦대러 국제협정 체결 협상 개시 중단 ▦비자 완화 협상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아베 총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일부 러시아 정부 인사 비자 발급 제한 ▦자산 동결 ▦우크라이나 10억 달러 금융지원 등의 추가 조치도 내놓을 것으로 일본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지난 19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에서 더 나아간 게 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쫓아갈 상황은 아직 아니다"며 "현재로서는 성명 이상으로 더 나갈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조심스런 대응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북방 경제협력의 주요 파트너이자 북핵 대응의 한 축인 대러 관계 악화의 대가가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의 악화와 미ㆍ러 대립 격화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및 국제적 고립 전략이 본격화할 경우 우리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도 최근 러시아와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해 경우에 따라서 중단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으로서는 러시아 경제를 옥죄는 수단으로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석유ㆍ가스 수출 차단을 모색하고 있다"며 "미국이 최근 자국 내 생산이 급증한 셰일 가스의 시장 확보를 위해 우리에게 러시아 가스도입 사업의 재검토나 규모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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