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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두렵다, 가정폭력 처벌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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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두렵다, 가정폭력 처벌 후에도

입력
2014.03.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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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의 무허가 주택 밀집지역에 사는 40대 주부 이진숙(가명)씨는 올해 1월초 노크 소리에 집 문을 열었다가 몸이 그대로 얼어붙는 듯했다. 불과 두 달 전 과도로 복부를 수차례 그어 자해하고, 말리는 자신에게도 칼을 휘둘렀던 남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남편은 알코올 중독 치료병원에 격리돼 치료를 받아왔다. 분명 병원에 있어야 할 남편은 "간경화 치료제를 가지러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 왔다고 했다. 남편은 "나를 왜 병원에 가뒀느냐"며 이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이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쓰러진 이씨를 일으켜 세운 것은 김명성(48ㆍ여) 경위였다. 서울 관악경찰서 여성보호계에서 근무하는 김 경위는 지난해 10월부터 가정폭력 전담경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첫 번째 사건 이후 이씨에게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살피던 김 경위는 두 번째 사건을 겪고 나서는 불안한 마음에 아예 이씨의 집을 수시로 방문한다. 김 경위는 "이씨가 처음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가 이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의지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경위의 도움으로 이씨와 그녀의 고교생 딸은 곧 다른 지역의 임대주택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피해자를 가정폭력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기는 쉽지 않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가정폭력 사건을 조사할 때 피해자에게 반드시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지나 직장 100m 안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임시조치' 신청 여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가해자의 분노를 키우는 것이 두려워 피해자들은 신청을 꺼릴 수 밖에 없고, 가해자가 이를 위반해도 500만원 상당의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 남편이 다시 알코올 중독 치료병원에 격리됐지만 이씨는 지금도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두려워한다고 김 경위는 전했다.

처벌강도가 비교적 센 법원의 '피해자보호명령(임시보호명령)'이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가 신청해야 하고 결정이 나기까지 8~10일 정도의 공백기간이 있어 가해자 접근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피해자보호명령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김 경위는 "보복을 두려워 하는 피해자들이 보호명령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명령 의무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가정폭력은 가해자 처벌 못지 않게 피해자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는 가정폭력 전담경찰관 212명이 '가정폭력 솔루션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전담경찰관제도는 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서에서 시작해 10월에는 서울 전체 경찰서, 올해 2월부터는 전국 경찰서로 확대됐다. 이들은 피해자를 위해 ▦병원치료 지원 ▦정서적 안정을 위한 전문 상담사 연계 ▦경제 지원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연계 등을 담당한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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