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남 목포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와 입원환자 등 6명이 잇따라 홍역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지만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당국이 이를 알고도 숨긴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서울에서 서태평양지역 홍역퇴치인증위원회를 열고 우리나라를 '홍역퇴치 국가'로 인증한 직후인 지난 22일에야 전남도가 환자 발생을 공식 발표해 보건당국이 홍역퇴치국 지위 확보를 위해 관련 사실을 쉬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23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목포 K병원은 이달 1일 A간호사가 홍역 의심 증상을 보였지만 즉시 관할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았고, 지난 10일 홍역 확진 판정이 내려지자 뒤늦게 감염사실을 통보했다. 신고를 받은 목포시보건소는 즉각 A간호사의 주소지인 무안군보건소와 전남도에 의료기관 연관감염에 의한 홍역 환자 발생을 알렸고, 질병관리본부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에도 관련 사실을 올렸다.
이후 병원측과 보건당국은 A간호사와 접촉한 입원ㆍ외래환자 및 의료진 등의 감염 여부를 추적 조사해 A씨의 아들, 외래환자 B씨와 자녀 1명, 입원환자 C씨 등 모두 5명이 15~19일 홍역에 추가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목포시내 병원 3곳에 각각 격리돼 치료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2명은 현재까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전남도는 이달 20일 홍역 환자 추가 발생이 우려된다며 일선 시ㆍ군 방역관계자 긴급 대책회의까지 열고도 이틀이 지난 22일에야 홍역 발병과 정밀 역학조사 착수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WHO 서태평양지역본부는 18~21일 서울에서 한국과 호주, 몽골, 마카오에 대한 홍역퇴치 국가 인증 여부를 결정하는 제3차 지역홍역퇴치인증위원회를 개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토착화한 홍역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 발생이 3년 동안 한 명도 없고, 홍역 예방접종률 95% 이상을 유지하며, WHO 인증 감시 체계가 가동되는 등의 기준을 충족해 홍역퇴치 국가로 인증 받았다.
이 때문에 전남도와 질병관리본부 등이 홍역퇴치 국가 인증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홍역 환자 발생을 일부러 숨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남도는 국내 토착형 홍역 바이러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감염 환자의 혈청과 인후도말 검체에 대한 검사를 질병관리본부에 의뢰하지도 않았다.
대표적인 '후진국 감염병'으로 분류되는 홍역은 제2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된 급성 발진성 호흡기질환이다. 올해 들어 벌써 30여명의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은 추가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홍역 환자 발생과 관련한 내용 공개에는 이런 부분(WHO의 홍역퇴치 국가 인증 결정)이 고려된 점도 없지는 않다"며 "홍역 바이러스의 해외 유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4일 질병관리본부에 검체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법정 전염병의 발생사실 공개는 추가전파 가능성이나 치사율 등을 고려해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박옥 질본 예방접종관리과장은 "한국이 홍역 퇴치 및 예방을 잘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WHO 서태평양지역본부가 서울에서 위원회를 개최할 것을 요청했으며, 목포에서 홍역환자가 발생한 것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것과 이번 위원회에서 한국을 홍역퇴치국으로 인증한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