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눈 깜짝할 새였다. 크림반도의 주인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다. 사태는 지난달 말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로 실각된 데서 시작됐다. 친서방 과도정부가 들어서자 지난 1일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전격 점령했다. 16일엔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을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돼 96%의 찬성표가 쏟아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크림반도를 독립국가로 인정한 뒤 의회 비준을 거쳐 21일 신생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문서에 최종 서명했다.
베이징(北京)에서 유럽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순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반도와 우크라이나는 너무 닮았다. 우크라이나가 서쪽의 미국ㆍ유럽연합(EU) 세력과 동쪽의 러시아 세력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도 남쪽의 미일 해양 세력과 북쪽의 중러 대륙 세력이 충돌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 간 전쟁터가 된 것도 유사하다. 이젠 한 나라가 둘로 나뉜 것도 비슷하다. 동서가 남북으로 바뀐 것뿐이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끈 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며 내건 명분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만약 한반도에서 중국의 이익이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도 똑같이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북한이나 한반도 일부를 점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을 오가는 중국인의 수는 날로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뒤 중국 군부 일각에선 만일의 사태에 대비, 군사적 개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조차 "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 명분으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선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 역사만 봐도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언제든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해 왔다.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군과 한반도로 온 당나라군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명나라 군대는 한반도에 발을 들여놨다. 120년 전 갑오동학농민운동 때도 청나라 군대는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벌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개국한 지 1년 밖에 안 된 신중국은 항일원조를 명분으로 대군을 보냈다.
더군다나 지금 중국 지도부는 "대문 앞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중국의 대문 앞은 한반도를 가리킨다.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의 롤모델이 푸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시 주석은 취임 후 2년 연속 첫 해외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갔다. 시 주석이 주창하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푸틴의 '강한 러시아'는 일맥상통한다. 크림 사태가 자국 내 소수민족을 자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사실상 러시아 편을 든 연유다.
두 눈 뜬 채 속수무책으로 크림반도를 뺏긴 우크라이나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키우는 것 밖엔 다른 수가 없다. 중국이 군사 개입 않기만 기도하는 것도, 러시아의 도둑질에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는 미국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도 금물이다.
무엇보다 남북이 민족의 일은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 동안 중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이 한반도 내 일부 집권층 및 일부 지역 세력의 요청으로 이뤄져 왔다는 사실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핵을 포기한 뒤 수모 당하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북한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할 때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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