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석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뜬금없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는 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치에서 만났다면, 푸틴이 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우크라이나 사태에 강수로 일관하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오바마가 소치에 가지 않은 이유는 동성애 인권 때문이었다. 동성애자 차별법을 시행한 푸틴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동성애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부상, 스포츠 외교마저 포기시킨 것은 전무후무했다. 동성애 문제가 외교 무대에 등장한 사례는 또 있다. 오바마는 최근 동성애자를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한 우간다를 공개 비난하며 원조 중단을 선언했고, 보수적인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동성애자를 대사로 보냈다.
사실 동성애 외교는 2011년 '동성애자의 권리도 인권이다'는 제네바 선언을 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선언적 의미가 강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 미국 국무부는 세계 외교사에 쓰여질 다음 이슈가 동성애 문제라고 확신하는 모습이다. 국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3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이 문제를 인권외교 차원에서 대응할 방침을 천명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보고서는 국가별로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 측면에서 분석한 항목을 신설해 비판적으로 다뤘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며 "차별법의 존재와 사회적 차별이 동성애자와 그 지지자에 대한 폭력이자 합리적 양심에 대한 모욕"이라며 동성애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동성애 외교에 관한 한 민주, 공화 양당은 초당적이다. 물론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시각은 서로 다르지만, 동성애자가 누구를 사랑하느냐 문제로 처벌받아선 안 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동성애 인권외교는 아직은 실패의 연속이다. 우간다는 나치의 유대인 차별에 비유된 동성애자 차별법을 강행했고, 나이지리아 역시 사회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법 시행에 들어갔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꿈쩍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38개국을 비롯 중동, 유라시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약 80개 국가에서 동성애자 차별법을 두거나 인간적 존엄을 해치는 관행이 남아 있다.
미국이 동성애를 성적 취향의 인정 문제를 넘어 권리 문제로 나아간 반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 동성애를 인정할지, 범죄자로 처벌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단계인 셈이다. 동성애 문제를 인권 외교로 접근하는 미국에 공감하는 나라가 아직은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동성애 이슈가 너무 빨리, 또 멀리 온 게 아닌지 미국인들 조차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한편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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