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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중 평판 의식" vs "순수한 진심의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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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중 평판 의식" vs "순수한 진심의 발로"

입력
2014.03.2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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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부위 '편도체'가 타인의 시선을 알아내복내측 전전두엽에 전달… 이타적 행동을 유발""다른 사람이 고통받으면 내가 통증 느낄때 반응하는뇌의 같은 곳이 활성화… 공감 메커니즘과 연관"

당신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여러 도형 그림 중 특정 모양을 골라내는 것이다. 정확한 모양을 선택하면 점수를 얻지만 틀리면 점수를 잃는다. 점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점수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문제를 풀 것이다. 그런데 같은 과제를 낯선 사람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면 어떨까. 점수가 낮아도 고통은 남이 받는다.

도덕신경과학이 인간의 이타심, 넓게는 도덕성의 본질을 파헤치는 학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덕은 순수한 진심일까 아니면 순백의 가면에 가린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일까.

직관적 선택 & 분석적 선택

국내 연구진이 도형 선택 과제를 실제로 실험했다. 피험자 30명에게 한번은 자기 자신을, 또 한번은 남을 위해 문제를 풀게 하고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했다. 피험자들의 행동과 fMRI 영상을 분석한 결과 크게 두 그룹으로 분류됐다. 자기 점수가 쌓일 때는 문제를 열심히 풀다가 남의 점수에는 그만한 노력하지 않는(이기적) 그룹과 자기 점수든 남의 점수든 다 높이려고 애쓰는(이타적) 그룹이다.

두 그룹의 뇌 영상은 전혀 달랐다. 이타적 그룹은 자기나 남의 문제를 풀 때 모두 복내측 전전두엽이 활발했지만, 이기적 그룹은 자기 문제를 풀 때는 복내측 전전두엽이 활발한 반면 남을 위한 문제를 풀 때는 배내측 전전두엽이 활발했다.

뇌에서 원초적 정서부터 고등 인지기능까지를 관장하는 부위가 전두엽인데 그 중 가장 넓은 영역이 전전두엽이다. 전체 뇌 부피의 절반 가까이가 전전두엽이다. 전전두엽의 핵심인 중심 부위(내측)가 코 바로 뒤며 내측 위를 배내측, 아래를 복내측이라 부른다. 배내측 전전두엽은 긍정적인 판단을 하거나 시간이 걸리는 분석적인 정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고 복내측 전전두엽은 직관적인 판단을 하는데 기여한다.

고려대 심리학과의 김학진, 설선혜 두 교수는 "나와 남을 위한 선택을 할 때 뇌에서 각각 다른 신경회로가 작동할 수 있다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남을 돕는 행동이 '직관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이타적 그룹), '이걸 풀까 말까' 하고 따져보는 과정을 거친 '분석적' 결과(이기적 그룹)도 있다는 얘기다. 이 연구는 '도덕심리학에 대한 다학제적 관점'을 주제로 20~22일 고려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나도 모르게 남 눈 의식하는 뇌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뇌에서 두 경로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은 최근 도덕신경과학의 주류 가설이다. 이 가설을 제시한 조슈아 그린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도 이번 학회에 참석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린 교수팀은 피험자들에게서 기부금을 걷으며 돈의 액수와 돈을 내는데 걸린 시간을 비교했다. 그 결과 금액이 많을수록 기부금을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았다. 적게 기부하는 사람이 더 망설였다는 얘기다. 10초 안에 돈을 내라고 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를 비교했더니 10초로 제한했을 때 기부금이 많았다.

그린 교수는 기부금 액수를 빨리 결정한 경우와 늦게 결정한 경우를 카메라의 자동 모드와 수동 모드에 비유했다. 자동 모드는 효율성은 뛰어나지만 꼼꼼한 조절이 안되고 수동 모드는 그 반대다. 도덕성을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하도록 유도하면 무의식적으로 뇌가 자동 모드가 돼 남을 배려하는 친사회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그린 교수는 설명했다. 반대로 수동 모드가 작동하는 것은 도덕성의 목적을 꼼꼼히 따진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은 그 목적 중 하나로 평판을 든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한다는 얘기다.

최근 미국의 연구진이 슈퍼마켓 계산대 옆에 기부금 상자를 놓고 돈이 얼마나 모이는지를 실험했다. 처음에는 상자에 사람의 눈을, 다음엔 별을 그려 넣었더니 같은 시간 동안 눈을 그린 상자에 돈이 많이 모였다. 무의식 중 남의 시선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게 더 많은 이타적 행동을 유발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측했다.

남의 시선에 가장 민감한 뇌 부위는 편도체다. 20분의 1초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선에도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도체는 복내측 전전두엽 가까이에 있다. 따라서 편도체가 빠르게 알아낸 타인의 시선 정보가 복내측 전전두엽으로 전달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직관적이고 순수한 듯 보이는 이타적 행동이 어쩌면 그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평판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이 왜 도덕성을 건드리나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도덕성 발휘 경로가 칼로 무 자르듯 딱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주장甄? 더구나 타인이 고통 받는 것을 목격하면, 자신이 통증을 느낄 때 반응하는 뇌 부위와 같은 곳(뇌섬엽)이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있다. 도울까 말까 주저 없이 이뤄지는 이타적 행동이 타인에 대한 공감 메커니즘과 연관돼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할 수 있다.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과학의 잣대를 섣불리 갖다 댈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과학이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되묻는다. 도덕성이 발휘되는 뇌 메커니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면, 복잡한 사회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린 교수가 든 예는 이런 기대에 힘을 실어준다. "인종차별 문제를 접할 때 어떤 이의 뇌는 쉽게 자동 모드가 된다. 주저 없이 자신이 속한 인종에 대해서만 이타적 반응을 보여 갈등을 만든다. 복잡한 도덕적 판단이 요구될 땐 뇌를 수동 모드로 작동시킬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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