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25~28일) 중 가장 주목되는 일정은 드레스덴 공대 연설(28일)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구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을 찾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이 도시가 통일된 독일의 성공을 상징하는 대표 지역이라는 점에서 통일 관련 메시지가 발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에 이어 얼마나 획기적인 통일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훗날 '드레스덴 선언'이나 '통일 독트린'으로 불리는 박근혜표 대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통일과 통합을 이뤄낸 독일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며 방독 목적이 우리의 통일 대비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실제 박 대통령의 방독 일정을 보면 독일 통일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 시찰(26일), 통독 인사 연쇄 접견(27일), 파독 광부ㆍ간호사 면담(28일) 등 드레스덴 연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간표로 짜여 있다. 정부 관계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대표적 '히든 히어로(숨은 영웅)'"라며 "산업화의 역군을 내세워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강조하고,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도 이제 통일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이 역대 대통령들의 대북 제안 단골 무대라는 점도 통일 담론의 새판짜기를 기대케 하는 요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3월 베를린에서 포괄적 대북 지원 원칙을 내놨다. 2000년 3월 '햇볕정책'의 토대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3개월 뒤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1년 5월 베를린에서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안보정상회의 초청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통일 구상을 밝힐 장소로 베를린이 아닌 드레스덴을 점 찍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흘 밤낮으로 계속된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이 역사적인 도시는 통독 전만해도 경제적으로 쇠락한 변두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 통일과 동시에 독일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경제구조개선사업(GWR)에 힘입어 AMD, 인피니온, 프라운호퍼 연구소, 지멘스, 폭스바겐 등 세계 유수기업과 시설을 잇따라 유치하며 지금은 독일을 대표하는 첨단과학도시로 탈바꿈했다. 드레스덴은 통일에 수반되는 준비과정 즉, '경제ㆍ사회적 기반 조성'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벤치마킹하기에 최적의 성공 모델을 갖춘 셈이다. 외교 소식통은 "베를린이 통일 자체의 의미를 대변한다면, 드레스덴은 통일의 과정과 성공 조건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중심축으로 정부의 남북관계 패러다임이 가동 중인 만큼 드레스덴 연설에서는 보다 구체성을 띈 대북 제안이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가령 제2 개성공단 조성사업 등 대규모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교류의 질적ㆍ양적 확대를 꾀하는 제안이 나올 것이란 예상도 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은 북한이 통일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통일 대박론의 후속 기조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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