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어렵게 성사되면서 얼어붙은 한일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사실 3국 정상회담 개최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던 것은 이해득실과 후폭풍에 대한 셈법이 복잡 미묘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을 축으로 일본과의 3각 협력체제를 복원하는데 동참하면서 우호적인 한반도 안보환경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대일관계에서는 주도권을 잃고 끌려가는 모양새로 비치게 됐다. 이와 달리 일본은 한일관계 경색에 따른 부담을 덜었지만 아베 내각이 우경화 폭주를 하던 것에 비하면 행동반경에 제약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대북 정보자산을 공유하는 미일 양국과의 확고한 안보공조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해 직접 두 차례나 계승 입장을 밝힌 점도 우리가 얻은 성과로 꼽힌다. 특히 일본측이 위안부 문제를 다룰 국장급 회의를 개최하자는 우리측의 요구에 성의를 보이고 있는 점도 정상회담에 응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세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간 협력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 일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막판까지 한미일 정상회담 참가를 저울질하다 마지못해 수용하며 주도권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고노 담화 외에 추가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반응하지 않았다.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에서 우리가 먼저 핸들을 꺾은 격이 됐다.
일본은 당초 계획대로 한국을 정상회담에 끌어들여 고무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베 총리의 적극적 평화주의가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반면 아베 내각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고노 담화 검증작업은 당분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달 하순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브레이크 없이 우경화로 치닫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처럼 한일 양국이 득실을 주고받으면서 모처럼 접촉면을 넓혔지만 이번 회담이 관계개선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대일정책 기조가 그대로다. 일본이 먼저 역사인식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부가 한미일 정상회담에 응한 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아니라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 대북공조 강화"라며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한일관계의 물꼬를 트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번 회담이 자칫 일본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다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상관없이 한일 정상이 만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적인 대화'를 강조하는 우리측과 차이가 크다.
한일간에 인화성 높은 악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국이 관계개선의 첫 발을 떼긴 했지만 내달 초 일본 교과서 검정과 올해 상반기로 예상되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등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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