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판별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단순한 방법이 이로 깨물어 보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겠지만 현실에선 그다지 쓸모가 없다. 돌 반지 등에 쓰이는 18K의 금 함량이 약 58.3%인 걸 감안하면, 순도 99.99%인 금덩이가 아닌 이상 이만 상한다. 금값이 하도 올라 몇 년 전부터는 5K(금 함량 20.83%) 제품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가짜 금괴 사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해 한 사기꾼은 매장 전시용 가짜 금괴 5개(시가 100만원)를 팔아 2억5,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황동에 도금을 한 터라 실제 무게가 절반도 안되고 '견본'이라고 찍혀있건만 피해자들은 시세보다 싸게 판다는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갔다.
바가지는 또 어떤가, 판매상이 작정하고 함량을 슬쩍 속인다 해도 금 만져볼 기회가 드문 일반인은 속을 수밖에 없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금반지를 팔러 갔더니 금이 아니라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음성거래도 판친다. 밀수 금을 제외하더라도 연간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 100~110톤 중 음성적인 거래가 절반을 넘는다(55~77톤)는 게 정부의 추정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 모으기로 팔린 금이 무려 128톤이었는데, 당시 공식통계보다 많은 물량이었다고도 한다. 국세청이 공개하는 장기 고액체납 명단에도 금 관련 사업자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금이란 종자는 결국 부자들의 안전한 치부 수단 정도로만 여겨진 지 오래다.
이런 금의 우울한 껍질을 벗겨내고자 24일 금 현물시장이 정식 개장한다. 밀수, 음성거래, 함량 속이기, 바가지 등을 일거에 해결할 묘책이라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와도 맥이 닿으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래방법은 ▦별도계좌 개설(증권사 선물회사) ▦매매단위(1g) ▦매매시간(오전 10~오후 3시) ▦단일가격 및 접속매매(호가) 방식 ▦일일 가격변동 제한폭(±10%) ▦주식거래단말기(HTS)나 모바일거래시스템(MTS) 사용 등 주식거래와 비슷하다. 1년간 거래수수료가 면제되고 위탁수수료(0.4~0.5%)도 낮다. 현물로 받고 싶다면 1㎏ 단위로 부가가치세(10%)를 내면 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주식처럼 거래하니 보존비용이나 멸실 위험이 없고, 현물을 받더라도 공인 받은 순금이라 안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은행들의 골드뱅킹보다 수수료가 싸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금 시장에 참여하는 증권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부 기대만큼 뜨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금이 대표적 무기명 자산으로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실물 자산이라 기존 음성거래에 익숙해진 부자들이 쉽게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자들이 호환 마마보다 두려워하는 게 세원 노출이라는데, 사는 입장에서 세제 혜택은 없고 거래 기록만 남을 텐데 누가 사러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금의 급격한 가격변동도 위험 요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치솟던 금값은 미국 등의 유동성 축소로 뚝 떨어지더니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맞물리면서 반짝 오르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을 전재산의 10% 내외 비중으로 장기 보유하면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의미가 있지만 주식처럼 거래하기엔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증권사들은 가뜩이나 증권 선물시장이 어려운데, 돈(수익)도 안 되는 금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고 얘기한다. 현재도 미니 금 선물시장은 거래가 미미하고, 금 상장지수펀드(ETF)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3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금 현물시장 개장 첫날 창고(예탁결제원)에 입고되는 금은 30㎏ 가량이다. 시가로 15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한동안 금고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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