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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3월 22일] 규제개혁은 사람 문제다

입력
2014.03.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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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앙부처가 민간인 자문위원회를 열었다. 10여 분 늦게 나타난 차관은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진짜로 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집에 손님을 불러놓고 "다들 왔습니다."라는 보고를 받고서야 안방에서 나오는 게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자기보다 늦게 입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관직의 존엄과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최소한 10분 전부터 문간에 서서 손님들을 맞는 게 예의다. 그런데 장관 차관 중 그런 걸 생각이나 해본 사람이 있을까. 관존민비의 행태는 여전히 완고하다.

그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 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를 보면서 이런 생각부터 하게 됐다. 회의를 계기로 고질적인 문제가 10분 만에 풀리기도 하고, 규제개혁 이행목록 작성, 규제비용총량제 시행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의식과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규제개혁은 눈속임일 뿐, 신악이 구악을 밀어내듯 변형된 규제가 새로 등장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갖춰야 할 것은 공개념과 봉사정신이다. 자신의 일과 행사하는 권한, 쓰고 있는 예산과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공개념을 갖추게 되면 공공의 안녕과 이익에 맞지 않는 행정을 지양하게 되지 않을까.

봉사정신은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 덕목이다.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다. 대통령은 가장 높은 서비스업 종사자다. 다 같은 종업원인 공직자들은 주인과 손님들을 위해 밤낮으로 궁리하고 노력해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주인과 손님들의 위에서 행세하려 한다. 규제는 그런 행세를 하는 데 중요한 무기이다.

다 망해가던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가와(旭川)동물원은 19년 전부터 대대적인 변혁을 계속해 세계 굴지의 동물원이 됐다. 손님이 늘어난다고 봉급을 더 받는 게 아닌데도 시 공무원인 직원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큰일을 해냈다. 특히 동물을 '전시'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동물들의 눈에 맞춰 인간과 교감하는 운영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면 규제를 없애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하고 먼저 해야 하는 일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은행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신속한 업무 처리이지 친절한 미소와 상냥한 태도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본말을 구분하지 못한다. 경비와 안내 업무를 병행하는 직원에게 중요한 것은 큰소리로 인사를 잘하는 게 아니라 먼저 온 사람이 현금인출기를 먼저 사용할 수 있게 '한 줄로 서기'를 유도하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공개념과 봉사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요원하고 오활한 이야기 같지만 초등학교부터 교육을 바꿔야 한다. 동양 고전을 읽혀 도덕심과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예전 과거시험에서 글을 쓰게 한 것은 작문능력만 보자는 게 아니었다. 인성을 점검할 수 있게 공무원시험 과목도 바꾸는 게 좋겠다. 그리고 부정 비리를 저지르거나 규제를 이용해 사복을 채우는 자들을 척결해야 한다. 금감원이나 한수원, 이런 쓰레기 같은 자들의 집합소를 대수술해야 한다.

아울러 정권 차원에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 '규제 전봇대'를 거론했지만, 규제개혁 논의는 지금도 여전하다. 전봇대는 손톱 밑 가시, 신발 속의 돌멩이가 되었다. 크고 눈에 잘 보이던 장애물이 작지만 사람을 더 괴롭히는 액물이 된 셈이다.

이번 정부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고 규제개혁을 경기 부양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데다 규제개혁이 국제적 추세라는 점에서 전과 다를 거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규제는 제도 문제이면서 사실은 사람 문제라는 인식이 해결방식의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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