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상류층의 삶을 소재로 다루는 데는 몇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대중의 선망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대중은 자신과 똑같은 서민의 삶을 보길 원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잠깐 잊고자 하는 심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무수한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그래서 상류층을 선망의 대상으로 다루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가 상류층을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라졌다. 선망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이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SBS가 주말에 방영하는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탄탄한 중견기업 2세와 재혼한 평범한 서민의 딸 은수(이지아)가 주인공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드라마는 이 상류층과의 결혼이 결국 어떻게 실패하는가를 다룬다. 빈부격차도 격차지만 상류층 자제의 방탕한 삶은 이 상류층 집안이 결코 판타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은수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것 역시 돈만 많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배려는 없는 시집 때문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달라진 결혼 세태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이른바 상류층의 삶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깔려 있다.
안판석 감독의 새 드라마 JTBC '밀회'는 멜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더 나아가 상류층의 삶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포획하고 있는가를 탐구한다. 이 드라마에는 빈부의 차이를 보여주는 세 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그 첫 번째는 상류층이다. 예술재단과 학원까지 운영하는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김용건)과 그의 아내 한성숙(심혜진), 딸 서영우(김혜은)가 그 세계에서 살아간다. 두 번째 세계는 서영우의 대학 친구지만 지금은 그 밑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오혜원(김희애)이 사는 공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녀와 사랑에 빠질 이선재(유아인)라는 전형적인 빈곤층 청춘이 살아가는 세계다.
이 세 개의 세계는 자본의 종속관계를 보여준다. 친구 사이지만 서영우가 오혜원을 비서로 부리는 것처럼 첫 번째 세계는 두 번째 세계를 종속하고, 또 오혜원이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천거하고 지원하려 하는 것처럼(이것은 사랑으로 변할 것이지만) 두 번째 세계는 세 번째 세계를 종속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나뉜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의 결정은 저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예술재단이 이선재 같은 천재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사실상 돈 거래로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켜주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오혜원과 이선재의 나이 차를 뛰어넘는 멜로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거기에는 이 가난한 천재가 그 능력으로 가난을 탈출하고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려는 진심이 들어있다. 이선재에 대한 오혜원의 사랑은 그래서 이익이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 그들을 바라볼까. 아마도 자본과 권력의 흐름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상류층의 시선은 이들의 사랑을 더러운 불륜과 치정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밀회'가 다루는 사랑 이야기는 지극히 사회적인 이야기가 된다.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청춘의 절망이 어떻게 상류층에 종속된 사회와 연관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겉보기에 화려한 상류층의 삶은 그래서 더 이상 선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사회적 문제로 지목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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