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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닥쳐도 신에 베팅하지 않은 무신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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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닥쳐도 신에 베팅하지 않은 무신론자

입력
2014.03.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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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버금가는 무신론 학자식도암 말기 진단 받고 병상서 써내려간 명상록투병 생활 고통·상실감 가감 없이 드러내지만내세·죽음에 무관심으로 대항

죽음이라는 굴레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 16장 26절)라는 예수의 말씀에 고개를 끄떡인다. 악인이 갑자기 회개하고 종교에 귀의하거나, 지독한 구두쇠가 전 재산을 기부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도 죽음과 관련이 있다.

이를 꿰뚫어 본 17세기 프랑스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은 "신을 믿으면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고 영원을 얻을 수 있지만, 천국의 제안을 거절하면 자칫 모든 걸 잃는다"고 말했다. '파스칼의 도박'으로 불리는 유명한 이론이다.

무신론자이자 언론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도 2010년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다. 식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2007) 등을 낸 히친스는 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영미권 지식인 사회에서 쌍벽을 이루는 무신론자다.

그는 2011년 12월 62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19개월 동안 팔, 손, 손가락의 통증을 줄여주는 주사를 맞으며 (원제 Mortality)를 타이핑했다. 소독약 냄새가 풍기고 싸늘한데다 네온 불빛이 빛나고 기계들이 윙윙 삑삑 소리를 내는 입원실에서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으며 퇴고 없이 써 내려간 명상록이다.

그는 평생 당당히 신과 종교의 허점을 파고들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친 병마는 응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 '파스칼의 도박'이론처럼 히친스는 회심(回心)하고 신의 품에 안겼을까. 결론부터 말해 그는 신에게 베팅하지 않았고 꿋꿋이 무신론의 지조를 지켰다. 마치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악마를 부인하라는 끈질긴 종용에도 "지금은 적을 만들 때가 아니다"고 중얼거렸듯.

오히려 히친스는 "적어도 어둠을 맞닥뜨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종교적 망상에 맞서 논박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모두가 성녀로 추앙하는 테레사 수녀에게도 "자기 희생의 화신은커녕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이자 근본주의 종교사업가"라고 일갈했던 그답다.

무신론자인 히친스에게 죽음은 '육체의 고통'으로 현상되는 듯하다. 그는 식도암 말기를 통보 받은 후 느낀 당혹감, 점차 파괴되는 육신과 그로 인한 고통 및 상실감을 리얼 드라마처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질병의 세계로 황량한 경계선을 넘는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누군가가 가슴과 흉곽 전체를 텅 비워버린 다음 서서히 굳는 시멘트를 채워 넣는 것 같았다. 내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내 힘으로 허파를 부풀릴 수 없었다. 심장은 너무 세차게 뛰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약하게 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나 요세프 라칭거(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같은 늙은 악당들의 사망기사를 쓸 수는 없더라도 읽는 것 정도는 할 수 없을까"하는 감상에 젖고 "설탕이 물 속에서 녹을 때처럼, 무기력 속에서 나도 녹아가는 것 같다"며 상실감과 열패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이 병은 지나치게 정기적으로 나를 놀리듯 오늘의 스페셜 또는 이달의 별미를 내놓는다"고 투덜거렸다. 담배와 스카치위스키, 대화, 훌륭한 글에 무한한 애정을 품었던 그는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병자의 나라는 나름대로 상당히 친절하게 나를 맞이해준다. 모두들 기운 내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주며 인종차별은 전혀 없는 것 같다. 대체로 평등 정신이 지배적이다."

결국 그는 죽음을 대하는 귀한 태도를 발견한다. 죽음에 대한 심드렁함, 무관심이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가 아주 귀찮아하며 "안될 것도 없잖아"라고 하듯. 이런 의도적 무관심은 무신론 논리의 연장이다. 죽음을 고뇌하지 않는 것, 죽음 이후를 불안해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죽음에 관한 성숙한 태도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회향(回向)이다. 그가 육체의 고통을 호소할망정 단 한 번도 죽음이나 내세에 대해 갈등하지 않는 것에서 무신론자의 결기가 보인다.

비록 미완의 메모 수십 장으로 끝나 아쉬움이 있지만 책은 웅변가이자 투사였던 저자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벌인 최후의 대회전으로 손색이 없다. "기억하라, 너 역시 유한한 생명임을"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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