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7시간에 걸친 '마라톤 끝장 토론'이었다.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불합리한 규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도려내려는 듯 저마다 작심하며 밤 늦도록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규제, 무엇이 문제인가' '규제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1ㆍ2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5명의 발제자를 포함해 중소 벤처기업, 학계 등에서 발언자로 나선 이는 모두 40명. 진행을 맡은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회의 시간이 6시간을 넘어 오후 9시로 치닫자 "끝장 토론이 무섭긴 무섭다"며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후련, 장관들은 진땀
규제라는 손톱 밑 가시를 없애겠다는 목표는 같았지만 민관 참석자들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기업인들은 마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앞다퉈 신문고를 두드리듯 현장의 애로사항을 때로 직설 화법을 동원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규제개혁을 주제로 이렇게 토론회를 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며 기업인들의 맺힌 심경을 대변했고, 이를 받아 또 다른 기업 참석자는 "이런 토론회는 단군 이래 처음인 것 같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부 각료들은 좌불안석으로 시종 굳은 얼굴이었다. 박 대통령이 민간 참석자들의 갖가지 문제 지적에 이어 공직사회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때론 싸늘한 표정으로 못마땅한 인상을 짓자 진땀을 빼는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이 종종 TV 화면에 비쳤다.
부처간 입장 엇갈려
이날 토론회는 60여명의 민간 대표들이 현장에서 겪은 애로를 토로하면 주무부처 장관들이 바로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회의가 끝장토론을 표방한 만큼 한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까지 모색하는 이른바 '원스톱'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각 규제마다 부처간 입장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처 장관끼리 미묘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관광숙박업이 학교보건법에서 유해시설로 규정돼 있다는 한 기업인의 지적에 대해 유진룡 문화관광부 장관은 "저희도 미치겠다"고 맞장구를 치며 "우리 사회가 너무 근엄해 저희 부가 관장하는 분야는 다 척결 대상이다. 다른 부처에서 (규제 완화에) 적극 노력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팍팍 압력을 넣어주셔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교육 환경을 위해 규제가 꼭 필요한 곳도 있다"며 예봉을 피해갔다.
한 게임업체 대표가 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규제를 풀어줄 것을 요청한 것을 두고서도 여성가족부와 문화부가 입장 차를 보였다. 조윤선 여가부 장관은 셧다운제가 효과를 보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자 유 장관은 "폐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냐"고 재촉하기도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짙은 녹색 재킷을 입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대통령 취임식과 지난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 걸쳤던 국방색 외투와 같은 계열 색이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초심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옷을 입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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