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신고 12가지 기재 같은 내용을 2곳에 신고""신고 내용 간소화 노력할 것""제품 성능인증 기관 제각각 유사 인증 여러번 받아야""KS표준 등 상반기내 해결""승소한 관광호텔 건립 민원 핑계로 승인 보류""허가 안내주는 공무원 부작위 감사""SW 아는 공무원 없어 잘 모르는 규제 만들기도""알아야 제대로 된 규제 만들어"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처음 열린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는 기업인들이 경제현장에서 겪었던 정부 규제에 대한 불만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민간 참석자들은 생산적 경영활동을 가로막는 중복규제 실태와 행정기관의 책임회피 자세, 과도한 의원입법 등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끝없는 규제의 덫
대ㆍ중ㆍ소를 막론하고 기업인들은 불필요한 중복 규제가 너무 많은 현실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1997년부터 냉동공조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기술산업 이지철 대표는 "폴리에틸렌 제품은 중소기업청의 성능인증 등 유사 인증이 5개나 있고, 수요 기관별 요구도 달라 비슷한 인증을 여러 번 받아야 한다"며 불합리한 인증제도에 따른 고충을 토로했다. 제각각 인증을 받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과도해 지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수원돼지갈비 김미정 사장은 고용 애로를 언급하며 "일용직 직원 신고 시 기재사항이 12가지나 되는데다, 같은 내용을 고용노동부와 국세청으로 이중 신고해야 하고 신고를 안 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항만물류업체 선광의 심충식 부회장은 "현재 정부 재정 3,000억원, 민간자본 5,000억원으로 인천 신항을 건설 중인데 항만법에 따른 각종 인ㆍ허가 절차는 물론 경제자유구역청의 허가도 따로 받아야 해 부지 기반시설 공사를 착공도 하지 못한 상태"라며 "항만실시공사 계획 승인을 일원화 해달라"고 요청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인증제도 개선과 관련 "각 기술마다 인증이 있지만 KS표준을 통해 다른 기술 기준을 만들지 못하도록 상반기까지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일용근로자의 신고 내용은 실업급여 지급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여서 불편을 감수해 주길 바란다"면서도 "신고내용은 최대한 간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과 항만공사법 개정을 통해 이중승인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여천 NCC 박종국 대표는 모호한 법 규정으로 피해를 본 경우다. 박 대표는 "법규상 산업단지를 만들 때 '산업직접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개발 전후 무려 지가 차액의 50%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은 규모가 명확하지 않아 지자체 녹지조성의 총 금액을 내야 한다"며 "부담금 경감이 투자로 이어질 수 있게 적용 법규를 일원화해 달라"고 했다. 이에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공장 조성) 전 단계를 세심하게 검토 기업에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답했다.
공무원 재량의 숨은 규제도 문제
지자체 간 규제 책임을 떠넘기거나 법에 없는 규제를 공무원이 멋대로 남발하는 행태도 단골 불만사항이었다. 한승투자개발 이지춘 이사는 "서울 양평동 초등학교에서 180m 떨어진 곳에 건립을 검토 중인 관광호텔과 관련해 5개월간 행정심판을 거쳐 겨우 승소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주민 민원이 있어 사업계획 승인도 어렵고 사업 승인을 보류하겠다'고 한다"며 "선행된 행정절차까지도 무시되는 재량권의 범위, 이런 것들은 오히려 중앙정부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관계자들도 행정기관의 소극적 행정 자세에 크게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어떤 지역은 정말로 학교 환경을 위해 규제가 꼭 필요한 지역도 있고 어떤 경우는 지나치게 규제하는 곳도 있어 지역교육청과 협의해 학교 환경과 투자활성화의 균형을 맞출 생각"이라고 답변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풀어도 중간단계에서 막혀버리는 게 있다"며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니 대통령께서도 확확 압력을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상당수 공무원이 민원 유발을 두려워하고 있어 '안 해주면 감사 받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올해는 허가를 왜 해줬느냐 보다 왜 안했나에 중점을 둔 '부작위' 감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은 "음식점에 필요한 지하수를 사용할 때 취수원은 화장실, 폐기물 처리시설 등 지하수 오염우려가 있는 장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명확하지 않은 행정규칙 탓에 자의적인 행정집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식품접객업 급수시설의 지하수 이용 규정이 현재 지자체 자율이라고 하는데 일제 실태조사를 거쳐 자율적으로 시행할지, 일정한 기준을 둘지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의원 입법은 황사 같은 존재
참석자들은 외국 사례 등을 들며 갖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부가 규제개혁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영국의 스콧 와이트먼 주한 대사는 "영국은 하나의 규제가 신설되면 규제 2개를 빼는 '원인 투아웃(one-in, two-out)' 제도를 도입해 5,3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봤다"며 "기업인에게 '규제 변화는 도움이 된다'는 신뢰를 줄 수 있게 개혁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이트먼 대사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서동록 매킨지 대표는 "싱가포르는 전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리조트뿐 아니라 크루즈 등을 연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며 "문체부와 해수부에서 산업의 시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규제의 원인으로 꼽히는 의원입법 문제와 관련해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의원입법은 '황사' 같은 존재여서 감시하는 제도가 전혀 없다"며 견제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많은 부처에서 이를 아는 공무원이 별로 없어 정부가 정부를 규제하는 제도가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일자리도 많은데 젊은이들이 몰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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