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로 대립했던 한일 양국이 안보협력을 매개로 관계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미국을 통해 한일 양국이 잇따라 의견을 조율하며 안보공조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것으로 알려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 공조방안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내달 초에는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세안+1' 국방장관 회담을 마친 뒤 한중일 3국을 순차 방문할 예정이다. 전통적인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복원하기 위해 정상들이 먼저 만나 원론적인 안보협력 의지를 표명한 뒤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이를 구체화시키는 수순이다. 정부 당국자는 20일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헤이글 장관이 온다는 전제로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헤이글 장관이 한일 양국을 찾는 것은 4월 하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둔 사전 정지작업 성격도 있다. 민감하고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과거사 문제보다는 북한 이슈라는 공통 현안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안보문제부터 다루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한일 양국을 방문했지만 관계 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경험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한일 과거사 문제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자칫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한일 양국의 현실적 필요성도 크다. 가령, 정보보호협정의 경우 2012년 밀실처리에 따른 역풍으로 중단됐지만 한일 군당국은 이 협정이 반드시 체결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양국은 1971년 이후 매년 정보본부장 회의를 통해 군사정보를 교류하면서도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법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정부는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편입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형 MD와 군사전력의 상호운용성은 인정하는 만큼 유사시에 대비해 일본과의 협의를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 관계자는 "국민정서에 막혀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수면 아래에 있지만 언젠가는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 내달 말 집단적 자위권의 내용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한일간 안보협력의 부담요인이다. 양국이 미국을 통해 일단 머리를 맞대겠지만 일본이 끊임없이 주변국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군사협력의 수준을 쉽사리 높이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최윤희 합참의장이 지난 11일 미국 방문 당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한일관계의 진행 상황을 봐가며"라고 전제를 단 것도 그 때문이다.
외교소식통은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안보협력의 분리를 강조하지만 두 사안이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게 한일관계의 특수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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