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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해 온 얼굴,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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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해 온 얼굴, 아파트

입력
2014.03.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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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아파트촌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무슨 공장들이 저렇게 한군데에 빽빽이 몰려 있을까 싶었다…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조정래 중)

58.9%. 서울 시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신도시는 더 높다. 중산층, 재개발, 철거민, 콘크리트, 층간 소음, 베란다 확장, 분양, 복부인, 투기… 이 문제적 단어들을 용광로처럼 하나로 녹여내는 아파트. 당신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인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아파트 인생'은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갖는 위상 변화를 시대별로 조망한다. 해방 후 처음으로 지어진 종암아파트(1958)부터 최초로 단지 개념을 도입한 마포아파트(1962), 와우아파트 붕괴로 생겨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만든 첫 모델하우스(한강맨션아파트ㆍ1969), 2000년대 들어 등장한 6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까지,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일하다가 아파트에서 죽는 한국인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다.

1960년대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혁명이었다. 62년 지어진 마포아파트는 10층 높이, 중앙 난방, 엘리베이터,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꿈 같은 약속과 함께 등장했으나 막상 시공 때가 닥치자 자금난으로 6층 높이에 연탄 난방으로 변경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주거공간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실험 무대와 같은 곳이었다.

70년대 아파트는 단절의 상징이기도 했다. 72년 10월 2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아파트 에티켓' 5개 조항에는 전통적 관계의 파괴, 중산층의 등장이 가져올 사회적 위화감에 대한 공포가 엿보인다. '1조 큰소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2조 베란다는 국경으로 생각해라. 3조 현관, 계단, 엘리베이터는 단지의 사교장으로 생각하라. 4조 허영은 금물이다. 5조 공동 일은 내 일 같이'.

80년대 아파트는 돈이었다. 복부인, 영어로 미시즈 스페큘레이터(Mrs.Speculatorㆍ투기꾼)라 불리는 이들은 편리한 주방 시스템 덕에 집안일에서 벗어나 아파트 투자에 눈을 돌렸다. 77년 당시 최고의 분양률을 기록한 목화아파트의 경우 당첨자 중 32%가 직업이 없는 부녀자였다. 88서울올림픽과 급속한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발 빠르게 강남 아파트를 사놓은 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수십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어떤 이들에게 아파트는 폭력이었다. 81년 사당동 산 22 판자촌 일대에 철거 단속반 1,600명이 들이닥쳐 500여 가구를 철거했다. 생존을 위해 재개발법 철폐를 요구하는 철거민들의 투쟁은 들불처럼 번졌다. 87년 사당2동 철거민의 아들 임채의(당시 5세)군이 담장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철거민대책위원회가 각지에서 조직됐다.

전시장 중앙에 이르면 실물 크기로 재현한 33평형 아파트의 내부를 볼 수 있다. 81년부터 서초삼호아파트 9동에서 살다가 재개발 때문에 최근 이주한 A씨 가정에서 내장재와 주요 가구들을 가져와 전시장에 재구성한 것이다. 20인치 TV 위에 놓인 청둥오리 목조각과 도금 트로피, 부의 상징이던 피아노, 그리고 조그맣게 딸린 식모방까지, 80년대 초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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