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봉제(연공급)를 폐지하고 성과급을 확대하는 내용의 임금체계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편안은 강제력은 없지만 산업현장에 미칠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개편안은 근속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오르는 호봉제를 완화하고 업무와 기능에 따른 직무ㆍ직능제 위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2016년부터 시행되는 60세 정년제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불가피하다. 중장년 인력 고용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부작용이 이미 산업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통상임금 확대 판결에 따른 기업 부담 증가도 고려 요인이다. 경제사회 환경의 변화추세로 볼 때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에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개편안의 내용이 비용절감이라는 사용자의 이해를 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금체계가 성과 중심으로 바뀌면 사용자 주도로 임금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노조와의 단체협상으로 인한 임금인상은 어려워지고 사용자의 주관적 평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임금 감소와 무리한 성과 경쟁으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 평가방식에 의한 합리적인 임금시스템을 노사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사회적 직무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만드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도 검토할만하다.
통상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방안, 직무평가 방식 등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안을 발표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다. 지난해 노사정위원회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시작하려 했으나 경찰의 민주노총 진입 이후 한국노총마저 대화 중단을 선언해 노정관계가 끊겼다. 이런 와중에 가장 민감한 임금 문제를 건드려 올 봄 노사간 단체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일방적인 지침과 방안만 내놓지 말고 하루빨리 노동계가 대화의 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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