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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칼럼/3월 21일] 정부의 간첩조작

입력
2014.03.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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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3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눈빛극장에서는 '상처꽃'이라는 연극이 공연된다. 1974년 중앙정보부가 47명을 엮어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그 중 3명이 사형을 당했다. 이들이 사형판결을 받은 75년 4월 8일은 정부를 비판한 대구 경북 지역의 지식인 8명이 '인혁당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판결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의 포악성을 알리는 계기로 널리 알려진 반면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상처꽃'은 바로 이 사건을 무대에 올린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엮는 매개로 북한에 갔던 사람들이 나온다. 이성희 당시 전북대 교학처장은 일본 유학중이던 1967년에 북한에 갔다. 김일 부주석을 만나 '간첩을 남파하지 마라, 바른 길을 가라'고 설득했다. 북한에서 남파된 친척을 따라 가면 돈을 얻어올 수 있다고 해서 간 어부도 있다. 북한에 간 것은 죄가 될 수는 있어도 간첩은 아니었다. 그건 수사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주변사람들까지 간첩으로 엮었다. 여기에는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사건으로 좌천된 중앙정보부 직원의 출세욕이 작동했다. 무엇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를 선포한 뒤 정부 비판하는 소리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공포스런 환경을 만들려고 했다.

1972년 미국과 중국의 화해로 전세계에 해빙의 바람이 불고 한국도 7.4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했지만 조작간첩 사건은 늘어난다. 남북해빙무드에 간첩이 덜 내려오자 중앙정보부가 간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종길 교수가 죽은 해가 73년이다. 74년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해 정부가 황당한 내용의 긴급조치를 잇달아 발표한 해이다. 그러면서 2월에 문인간첩단 사건, 3월에 울릉도간첩단 사건, 4월에 민청학련 사건과 그 배후로 인혁당 사건을 줄줄이 발표했다. 정권 수호를 위한 간첩 조작질을 정보기관이 앞장섰고 검찰과 사법부가 편을 들었다. 정보기관의 수사대로 검찰은 기소했고 법원은 판결을 내렸다. 결국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일은 지금도 살아있는 당시의 중앙정보부 직원과 검사 판사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맡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과오를 40년 뒤까지 국민들이 갚아나가는 셈이다. 더욱 마음 아픈 일은 피해자들에게 갚는다고 갚아질 수도 없는 죄악이라는 사실이다.

국가정보원이 간첩으로 엮으려 한 전직 서울시공무원 유우성씨는 북한에 살던 화교이다. 그가 대한민국에 들어와 탈북자를 위한 대접을 받고 공무원까지 된 것은 잘못이다. 그러면 그걸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국정원은 그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여동생을 고문했고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공문서 조작에까지 나섰다. 검찰은 국정원 수사를 그대로 받아서 기소를 했다. 2월 13일 중국 정부가 서류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하자 국정원을 감싸기까지 했다. 어제 날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공문서 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국정원의 김모 조정관이 이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수사하던 사람이 증거를 못 찾자 조작에 나섰다는 말이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업무 방식을 답습한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에서 벌어졌다.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하는대로 기소하고 범죄가 드러나자 덮어주려 했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에서 정치개입을 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일이다. 그러나 그 사건의 수사와 재판은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중이다. 17, 18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유죄의 증거가 되는 전화번호, 이메일 내용, 트위터 계정을 모른다고 입을 맞췄다. 국정원 직원은 정보암기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상식을 무시한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경찰들의 일관된 부인 덕분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이 사건 수사를 끊임없이 축소하려 한 법무부를 믿는 점도 있을 것이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입증하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되기 어렵다. 이게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를 부흥시킨 아버지의 공은 잇고 독재를 자행한 과는 딛고 일어서고싶다면 국정원이 중앙정보부를 답습하는 일은 확실히 끊어줘야 한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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