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풍을 생각한다. 바깥 먼지가 걱정되니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따뜻한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러기엔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 걱정이니 다시 또 무엇이 좋을까를 생각한다. 꽃이 피면 남쪽으로 내려가야지 생각한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참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이 정도의 전개가 요즘 나의 뇌 속을 지배하는 봄 놀이자 봄 소풍이었다. 그러던 요 며칠 전, 괴산에서 올라온 지인으로부터 속이 다 포근해지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옮겨 적어보면 이러하다.
괴산의 한 작은 동네에 꽤 좋은 술집 하나가 있었다. 이 술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작고 허름한데다 그날그날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역시나 동네의 그렇고 그런 술집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가면서도 들르고, 약속을 해서도 들르고, 그러다 누군가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이 날라치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그런 곳이었단다. 단골은 새 사람을 데려와 단골을 맺어주고 새로운 단골은 오리지널 단골을 단골인지도 모르고 데려와 자기가 먼저 으스대며 다리를 놓기도 하는, 뭐 동네에 있을 법한 그런 술집이 있었단다.
한데 그 술집의 여주인이 별안간 술집 문을 닫겠다고 벼락선언을 한 것이다. 나이가 여든이 훨씬 넘었다는 여주인은 이제 장사를 하기에는 몸구석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고 이제는 사는 일이 아등바등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았던 모양이다.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과 친구들을 마주칠 자리가 없어진 사람들과 혼자 늘어놓는 주정을 받아줄 대상을 잃은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겠다는 술집을 향해 허망하게 입맛을 다실 일 밖에는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술집이 문을 닫지 않을 것을, 그리고 앞으로는 조용히 고분고분 술만 마시겠노라 여주인에게 통사정을 해봤지만 여주인은 한번 뒤집은 마음을 다시 뒤집지 않겠다고 명백히 했다는 것이다. 마을에 큰일이 나도 한국전쟁 이후로 이런 큰일은 처음인 것이다.
술집을 잃은 사람들은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주무르지도 펴지도 못하고 이참에 술을 끊어버릴까 어쩔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술을 사들고 그 집 앞 길바닥에라도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을 한 것이다. 행여 그 여주인의 마음이 허물어져 다시 술장사를 시작할지도 모를 거란 기대감으로 말이다. 굳게 걸어 잠근 술집 앞에는 허탈할 대로 허탈해 눈이 풀린 동네 술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어떤 날은 그 수가 꽤 늘어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형국에 이르자 마침내 주인이 끼얹을 양으로 끓는 물 한 바가지를 퍼들고 나왔겠다. 몇몇은 읍소하다시피 이 술집에 청춘을 다 바쳤다느니, 갖다 바친 돈이 집 한 채 값이라느니, 또 몇몇은 이 사람들을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며 공갈 반 협박 반으로다 간청을 하였겠다. 그때 사내들을 보다 못한 여주인이 못이기는 척 모로 서서 한 마디를 날렸으니 그 한 마디는 바로 이것이렸다.
"안주 내오란 말만 나한테 안 하믄, 이 찬 땅바닥에서 술 마시는 건 내 허락할게."
그것만이라도 어딘가 싶어 사람들은 가슴을 쓸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그 집 앞에서 술을 마신다는 전설 같은 전설이 바로 그 이야기의 줄거리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난 것도 아니고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픈 것도 아니고 그 차가운 땅바닥에서 마시는 술맛이 어떤 맛인지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그 무엇이 과연 있는가 하는 나직한 물음이 가슴께에 밀려왔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지키고픈 무엇이, 우리가 몇몇 날을 길바닥에 누워서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울고불고 할 그 무엇이 가슴 한쪽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그냥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양팔을 잘라내버리는 정도의 고통과 함께 없어지고 사라지는 거라 여길 그 '무엇'이 가슴 한가운데 맺혀 있다면 그 앞에서 두려울 일은 무엇일까. 그 무엇을 찾으러 이 봄길을 좀 나서봐야겠다.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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