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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3월 21일] 원자력 범죄와 방재

입력
2014.03.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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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핵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가 되면서, 갑자기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개정안'이 문제로 떠올랐다. 사안은 통과여부인데, 그래서인지 그 내용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체적인 내용은 테러나 파괴, 살상을 목적으로 원자력을 제조 소유 사용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나 처벌을 위해 국제적 공조체계를 수립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법이라고 한다. 믿기 힘들 정도로 뜻밖이다. 이거라면 따로 법을 안 만들어도 이미 충분히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새삼스런 법안을 보면서 거꾸로 원자력이 야기할 살상과 파괴를 그런 범죄적 의도와 목적 안에서 다루는 게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원자력에 의해 죽거나 다치고 또 파괴와 오염이 이루어진 경우는 많지만, 원자력이 의도적인 파괴와 살상 목적에 실제로 사용된 경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경우만 있을 뿐이다. 원자력이 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만, 그건 어떤 식으로든 국가의 개입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든 방어 내지 협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든, 원자력을 살상이나 파괴와 결부하여 사용할 가능성은 필경 국가와 결부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국가의 그런 행위를 '범죄'로 정해 처벌한다는 건, 전쟁 같은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원자력에 의한 살상과 파괴는 저런 가능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적 문제 아닌가? 후쿠시마의 방사능은 어떤 범죄적 '목적' 없이 터져 나왔지만, 그 어떤 범죄보다도 수많은 사람을 치명적 오염과 죽음으로 내몰았고, 대대적인 파괴를 야기하지 않았던가? 고리 원자력 발전소 또한 그렇다. 다행히 아직 방사능이 터져 나오는 사고는 없었지만, 관리 문제는 접어둔다 해도 수많은 부품들이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는 불량품, 미달품이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거기엔 당연히 뇌물이나 리베이트 같은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건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라고 불리는 집단들이 원자력발전소의 관리나 정보 등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후쿠시마의 일본이 이보다 더 했을까야 모르겠지만, 정보와 관리의 독점체제가 있었으니 이런 어두운 관계가 없었을 리 없다.

뇌물이나 리베이트를 목적으로 하는 거래를 두고 이번 법안처럼 '의도적인' 원자력 범죄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의도나 목적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야기할 사태가 후쿠시마 같은 대대적인 원자력 사고라고 한다면, 그걸 단지 '뇌물수수' 같은 것에 과실이나 직무유기 같은 것을 더해 처리해도 좋을까?

원자력으로 인해 야기된 피해의 대부분은 의도적인 살상과 파괴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지만, 어떤 범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더구나 원자력은 다른 살상, 파괴와 달리 '반감기'라는 기나긴 기간 동안 회복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그 심각함을 알기에 새삼 '원자력 범죄'를 규정하려는 것이라면, 그런 심각함에 부합하는 특별한 내용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직접적인 파괴나 살상을 의도하거나 목적하지 않았어도 '원자력 사고'라는 결과로 이어지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를 '원자력 범죄'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혹은 그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오류 전체를.

그래서 원자력 관련 시설을 장악하고 그에 관한 모든 정보나 통제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비판이나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너네가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며 자신 있게 반박하는 분들에게 자신의 말을 몸으로 책임질 기회를 드려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저 법이 목적으로 한다는 '방호'와 '방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만 원자력의 사용에 동의한 바 없으면서도 사고가 났을 땐 그 피해를 온통 뒤집어 쓰게 될 이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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