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정원 감축에 따라 지원금을 주겠다는 교육부의 특성화사업 신청 마감(4월 말)을 한 달여 앞두고 대학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하듯 일방적으로 학과통폐합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대학 교수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19일 서울의 한 대학 A 교수는 "교육부가 '돈 받고 구조조정할래, 나중에 앉아서 당할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대학도 졸속으로 학과통폐합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A 교수에 따르면 이 대학은 지난 3일 개강 후 교수들에게 2주의 기한을 주고 학과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특성화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 교수는 "구성원들이 학교의 비전과 목표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생략된 채 2주 만에 뚝딱 만들어낸 계획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교수들 사이에선 어떤 과가 살아남을 것인지 알력 다툼과 눈치보기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이 '지방대 구조조정'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만큼 학과통폐합의 압박은 지방에서 더하다. 지방의 한 거점국립대에서도 총장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구성원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학 B 교수는 "모든 과에서 인원을 10% 줄이라는 내부지침이 내려왔다"며 "교육부에서 특성화사업을 통해 돈을 준다니까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은데도 열흘 만에 학과통폐합 내용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전문대는 신입생 충원률이 80% 미만이면 즉시 폐과하는 내용을 담은 구조조정 규정을 만들어 논란이 됐다. 이 대학 C 교수는 "여론 수렴이나 합의 없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공고를 띄우고 설명회를 한 차례 한 후 만들어졌다"며 "구조개혁이 아닌 구조조정으로 대학만 살고 학생과 교수는 피해를 본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대학이 의견수렴은 물론 해당 학생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학과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논의 중이다.
'대학구조조정 전국순회 교수토론회' 운영위원장인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는 "특성화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 대한 지원평가와 구조조정을 연계해 사실상 강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어서 대학 내 학문의 균형 발전에 균열을 조장하고 대학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며 "지식산업 시대의 인력양성에 대한 장기 전망 없이 기능적 감축에 집중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교육부는 올해 26개 대학에 573억원을 지원하는 학부교육 선도대학(ACE)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 역시 지원대상 선정 시 정원 감축 정도에 따라 최대 5점의 가산점을 준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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