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는 생각은 이제 안 들어요. 많은 사람에게 이 병을 알려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그게 제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해요."
중학생 때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앓은 뒤 후유증으로 손가락과 다리를 절단한 이정준(26)씨가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5월에 열 사진전에 선보일 작품은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가수 빽가(본명 백성현)가 찍는다. 직장이 있는 부산에 머물다 촬영차 서울을 찾은 이씨를 18일 오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본보(2012년 2월 3일자)를 통해 처음 세상에 얼굴을 알린 지 2년 만에 만난 그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제가 직접 모델이 된 사진전을 열면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 기획하게 됐어요. 입장료는 없어요. 사진전을 보고 우리 센터를 통해 환우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분이 생기면 더 보람 있겠죠."
그가 말하는 센터는 2012년 자신이 설립한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를 가리킨다. 이씨처럼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때문에 장애가 남은 환우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200여명이 현재 회원이다.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예방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만든 단체다. 최근엔 세계뇌수막염연맹(COMO)에 공식 가입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발병 현황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씨가 장애를 얻은 직후부터 사회활동에 활발했던 건 아니다. 그 역시 대다수 환우들처럼 '왜 내게만'이라는 생각에 세상을 원망했고, 혼자만의 삶에 갇혀 지냈던 적이 있었다.
"2003년의 마지막 날 밤이었죠. 자다가 머리가 아파 깬 뒤로 밤새 기침 구토 설사가 계속됐어요. 심한 감기인 줄 알고 응급실에 갔는데, 시간이 갈수록 피부가 점점 벗겨지고 40도가 넘는 고열에 해열제도 듣지 않았어요. 고통 때문에 발버둥치다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게 석달 동안 반복됐죠. 죽고 싶어서 인공호흡기를 뗀 것도 여러 번이었어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몸 곳곳의 살이 썩어 떨어져나갔다. 코와 귀와 입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두 다리와 양손가락은 아예 잘라내야 했다. 다른 부위 살을 떼어 얼굴에 붙이고 의족에 적응해야 했던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그는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호남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세상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화상 입었냐고 물어요. 병명을 얘기하면 거의 모르죠. 그래서 제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봉사활동과 아르바이트, 인턴사원 등을 경험하는 동안 남들이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에 익숙해지면서 이씨는 스스로를 치유해갔다. 지난해엔 취업도 했다. 게임회사 넥슨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웹서비스 관리 업무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사용자들과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며 게임의 오류를 찾아내고 동향도 파악하는 일이에요. 제가 파악한 동향이 실제 게임 운영에 반영되는 걸 보면서 세상과 교감하고 있음을 실감하죠. 저를 보며 더 많은 환우들이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세균은 폐렴구균과 헤모필루스균도 있지만, 이씨의 경우처럼 치명적인 후유증을 동반하는 건 수막구균만의 특징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1981~2010년 국내 발병은 244건으로 파상풍(187명)보다 약간 많다. 기숙사 등 단체생활을 하는 영ㆍ유아와 청소년, 아프리카나 중동 여행객 등에게는 예방접종이 권고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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